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은 세계패권 경쟁의 서막
두 나라는 '투키디데스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스파르타 전사의 투구
스파르타 전사의 투구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시작은 2018년 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관세를 부과하며 시작한 선전포고가 1년여의 기간 동안 공방과 교전, 협상을 통해 마무리되는 듯싶다가 막판에 다시 틀어졌다.

투자자들은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 트럼프가 원망스럽다. 가뜩이나 국내경기가 좋은 않은 상황에서 미중간의 무역갈등과 이에 따른 세계경기 침체는 한국경제에 큰 부담이다. 주가는 하락하고 원화가치도 떨어지고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미중간의 무역갈등은 조만간 마무리 될 것이다. 두 나라가 ‘죽으려고 하는 싸움’이 아니라 ‘살려고 하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 무역협상의 타결이 완전한 해결이 아니라 일시적 봉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국제정치전문가들은 두 나라 사이의 이번 무역협상은 세계 패권경쟁의 작은 전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무역충돌이 단순한 경제적 차원이 문제가 아니라 훨씬 구조적인 이유에서 기인하는 세계 패권경쟁이기 때문이다.


◆예정된 전쟁(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그레이엄 앨리슨 지음, 정혜윤 옮김, 세종서적, 2017.

(원제 DESTINED FOR WAR: Can America and China Escape Thucydides's Trap?)


투키디데스 함정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을 다룬 이 책에서 저자인 그레이엄 앨리슨은 이 같은 갈등구조에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아테네의 역사학자 투키디데스(Thucydides)의 이름에서 따 온 명칭이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가장 힘이 센 국가는 스파르타였다. <더 300>이라는 영화에서 보았듯이 스파르타는 엘리트 전사들의 나라였고 군사강국이었다. 반면 아테네는 해상무역을 바탕으로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고 문화와 예술이 자유롭게 꽃을 피우는 떠오르는 신흥강국이었다.

지배세력과 신흥세력이었던 두 나라는 동맹세력의 정치적 갈등구조 끝에 결국 전쟁을 치르게 된다. BC 431년~BC 404년까지 30년 가까이 이어진 이른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그 다음이다. 결국 스파르타가 승리했지만 승자나 패자나 모두 쇠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이 같은 투키디데스 함정을 지금의 두강대국 '미국과 중국'에 투영시켜 분석하고 있다. 정리하면 투키디데스 함정이란 ‘새로 부상하는 세력이 지배세력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위협해 올 때 극심한 구조적인 긴장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2,500년 전에는 주인공이 ‘스파르타와 아테네’였고 지금의 주인공은 ‘미국과 중국’이다.

흥미로운 것은 두 세력의 심리상태이다. 앨리슨에 따르면 새로 부상하는 세력은 자만심에 빠지고 기존 지배세력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전자는 ‘신흥세력 증후군’이고 후자는 ‘지배세력증후군’이다. 지금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중국은 자신감이 넘쳐 자만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는 지배세력 미국의 행태는 지키려는 자의 절박함과 함께 빼앗기면 안 된다는 두려움도 기저에 섞여있다.

역사의 교훈들

저자는 하버드대학교에서 <투키디데스 함정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지난 500년 동안 신흥세력이 지배세력에 도전한 사례를 찾아내서 분석했다. 연구결과 이 같은 충돌은 모두 16차례가 있었다. 그리고 이 가운데 12번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투키디데스 함정 사례>

※앞쪽이 지배 세력, 뒤쪽이 신흥세력을 나타냄.

  1. 포르투갈 대 에스파냐(기간: 15세기 말, 경쟁영역: 세계제국과 무역패권, 결과: 전쟁 회피)
  2. 프랑스 대 합스부르크(16세기 전반, 서유럽 지배권, 이탈리아전쟁/합스부르크-발루아전쟁)
  3. 합스부르크 대 오토만제국(16~17세기, 중부유럽 지배권/동유럽 지배권/지중해 제해권, 오토만-합스부르크 전쟁)
  4. 합스부르크 대 스웨덴(17세기 전반, 북유럽 영토와 제해권, 30년 전쟁의 일부 전쟁)
  5. 네덜란드공화국 대 영국(17세기 중반~말, 세계 제국/제해권/무역, 영국-네덜란드 전쟁)
  6. 프랑스 대 대영제국(17세기말~18세기 중엽, 세계 제국과 유럽지배권, 9년전쟁/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7년전쟁)
  7. 영국 대 프랑스(18세기말~19세기 초, 유럽대륙과 유럽 내 제해권, 프랑스혁명전쟁/나폴레옹 전쟁)
  8. 프랑스와 영국 대 러시아(19세기 중엽, 세계제국/중앙아시아와 지중해 동부 영향권, 크림전쟁)
  9. 프랑스 대 독일(19세기 중엽, 유럽지배권,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10. 중국과 러시아 대 일본(19세기말~20세기 초, 동아시아 내륙지배권과 제해권, 청일전쟁/러일전쟁)
  11. 영국 대 미국(20세기 초, 세계경제 패권과 서반구 제해권, 전쟁회피)
  12. 영국 대 독일(20세기 초, 유럽지배권과 세계 제해권, 제1차 세계대전)
  13. 소련, 프랑스, 영국 대 독일(20세기 중엽, 유럽본토 패권과 제해권, 제2차 세계대전)
  14. 미국 대 일본(20세기 중엽, 아시아-태평양지역 제해권과 영향력, 제2차 세계대전)
  15. 미국 대 소련(1940년대~1980년대, 세계패권, 전쟁회피)
  16. 영국과 프랑스 대 독일(1990년대~현재, 유럽 내 정치적 영향력, 전쟁회피)

전쟁은 필연적인가

“아, 일이 이렇게 될 줄 진작 알았더라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총리였던 테오발트 폰 베트만홀베크의 말이다. 전쟁 후 엄청난 피해를 경험한 후 한탄하며 한 이야기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말은 2차 세계대전을 돌아보며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이 남긴 것이다. 독일에 대한 전투명령을 내린 처칠 역시 전쟁이 남긴 엄청난 피해를 돌아보며 좀 더 신중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동일한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다른 결정을 내릴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충돌은 결국 그리스 문명을 폐허로 만들었다. 지금도 그리스에 가면 파르테논 신전과 스파르타 유적지가 폐허로 남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쉬운 일이다. 반면 지난 500년 동안 지배세력과 신흥세력이 충돌했던 16번 가운데 12번이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역사적 사실은 충격적이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세계패권을 놓고 격돌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과연 전쟁으로 치달을 것인가? 저자는 전쟁이 필연적이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역사를 이해하면 충돌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나라의 지도자들이 마땅히 그리하여야 한다는 바람도 담겨 있다.

아무리 미국과 중국이 ‘강대강’으로 충돌한다하더라도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진주만을 침공하기 전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미국인은 아무도 없었다. 독일이 설마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한 유럽지도자들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미중간의 충돌이 단순한 무역전쟁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중국과 시진핑이 꿈꾸고 있는 ‘중국몽(China Dream)'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도 한국이 속한 동아시아의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두꺼운 책이지만 (색인포함 500페이지) 소설을 읽는 것처럼 술술 읽히는 책이다. 투자자가 왜 역사책을 읽어야 하는지는 알려주는 책이다.

“더 길게 되돌아볼수록 더 멀리까지 내다 볼 수 있다.” -윈스턴 처칠.

예민수 증권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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