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활동에 있어서 가격(price)은 매우 중요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싼 값에 싸는 것이 좋고 생산자 입장에서는 제 값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투자자입장에서는 가격(price)보다는 가치(value)가 더 중요하다. 그러나 가치는 눈에 잘 안보이는 것이 단점이다. 사물의 가치가 주관적이라는 점도 적정 가치를 매기는 데 어려운 점이다. 가격은 쉽게 눈에 보이는 장점이 있다. 물건에는 가격표, 주식에는 주가가 매일 매일 표시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격이 가치와 상관없이 위아래로 움직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기업의 가치는 하루 이틀 사이에 크게 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시장상황에 따라, 사람들의 심리상태에 따라 요동을 친다.

투자는 결국 ‘가격과 가치의 줄다리기’라는 점에서 투자자들에게 가격 이야기는 흥미롭다. 저자인 에두아르도 포터는 기자 출신의 칼럼니스트로서 다양한 가격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물의 가격뿐 아니라 생명의 가격, 행복의 가격, 문화의 가격 심지어 여성의 가격과 신앙의 가격까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 모든 것의 가격(The price of everything)

-에두아르도 포터 지음, 손민중·김홍래, 김영사, 2011


사물의 가격

사물의 가격이 책정되는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가격결정이 이성적인 혹은 합리적인 기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요와 공급 그리고 가격을 다루는 경제학에서는 경제참여자를 ‘합리적 인간’이라고 가정하지만 사실은 인간은 합리적 결정을 잘 하지 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 가격의 결정원리는 제품을 만드는데 들어간 노동의 양이 가격을 결정한다는 ‘노동가치설’이다. 도미니크회의 수사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에서 시작해서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르도로 발전해 온 노동가치설은 제품의 고유 가치를 생산물에 포함된 일의 함수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절대적 가치에 대한 개념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19세기 경제학 사상은 사물이 절대적이고 고유한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특정 사물의 가격은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서 결정되는 주관적인 성질이다.”

결국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며 전혀 실수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은 사실이 아니다.

생명의 가격

사람들의 공통적인 신념 가운데 하나는 생명의 값어치를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에 결코 가격을 매길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생명보다 더 비싼 게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생텍쥐페리

그러나 세상을 살다보면 현실적으로 생명의 가격을 산정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상을 하거나 보험에 가입할 때 생명의 가치가 꼭 필요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설 심청전에서 심청은 자신의 목숨 값으로 쌀(공양미) 삼 백석을 받아들였다. 생명의 가격은 국가마다 다르게 나타나는데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생명의 가격들은 다음과 같다.

‣1999년에 마지막으로 개정된 미국 환경보호국의 지침에 따르면 2010년 화폐가치로 볼 때, 한 생명의 가격은 약 750만 달러이다.(1,200원 환율을 적용하면 한화로 90억 원)

‣영국 환경부는 건강한 삶이 매년 2만 9,000파운드의 가격을 갖는다고 밝혔다.(1,400원 환율을 적용하면 한화로 4,221만원, 2015년 기준 세계인의 평균수명 71.4세 적용하면 30억원)

‣2007년 인도 시민의 가격을 평가한 세계은행의 조사결과 인도인이 한 해 동안 누린 삶의 가격은 3,162달러(379만 원), 전체 인생의 가격은 9만 5,000달러(1억 1,400만 원)에 약간 못 미치는 것으로 타나났다.

‣미국 9.11 희생자 보상기금은 테러공격으로 사망한 희생자 직계가족에게 평균적으로 약 200만 달러(24억 원)를 보상했다. 희생자 중 연봉 400만 달러 이상인 8명의 직계가족에게는 640만 달러(76억8천만 원)가 지급된 반면 최저 가격의 희생자는 25만 달러(3억 원)가 책정됐다.

행복의 가격

물질적인 부와 마음의 행복은 크게 관련이 없다는 주장이 제법 있다. 로버트 케네디는 “GNP는 우리 삶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요소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측정한다.”며 GNP의 양적 측정방식을 비판했다.

이에 대한 반향으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려진 부탄에는 국민 총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 GNH)라는 것이 존재한다. GNH지수는 9개 영역(심리적 웰빙, 지역사회의 활력, 생태계, 좋은 거버넌스, 시간활용 등)에서 70가지가 넘는 변수를 따져 산출한다.

하지만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물질적으로 풍요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보다 더 행복한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질적 부는 사람들도 하여금 많은 제약을 극복하게 해주고 ‘삶에 대한 주도권’을 쥘 수 있도록 해준다.

‣영국에서 실시한 연구 결과, 1점(가장 낮은 만족도)에서 7점(가장 높은 만족도)까지 행복 점수를 매길 경우 연간 수입이 125,000파운드(1억7,500만 원) 증가하면 삶의 만족도는 1점씩 높아졌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실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16,500~24,500달러의 공돈이 생기는 것은 결혼을 했을 때와 거의 비슷한 행복도 증가를 가져온다.(미국달러 1,200원 기준 1,980만원~2940만원).

‣2009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연간소득 24,000달러(2,880만원) 이하인 미국인들 가운데 30%가 우울증을 겪는 반면, 소득 60,000달러(7,200만원) 이상인 사람들 가운데 우울증 증세를 겪는 사람은 13퍼센트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자도 울 때가 있다는 것, 나도 알아요.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더 많이 울지요.”

-멕시코 TV프로그램 <부자도 울 때가 있다>의 여주인공 마리아 에르난데스의 대사

노동의 가격

일의 가격(임금)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격가운데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을 통한 임금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생활하기 때문이다.

노예제도가 자유시장 노동으로 바뀐 이후 임금은 계속해서 개선됐다. 1918년 달걀 12개의 가격은 일반적인 임금을 받는 미국의 제조업 근로자의 노동시간으로 환산하면 1시간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오늘날에는 이와 동일한 근로자가 5분 미만의 노동으로 달걀 12개를 살 수 있다.

임금은 개선되었을지 모르지만 몇 가지 측면에서 노동시장은 오히려 과거보다 더 가혹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임금을 조정하는 요인은 두 가지이다. 생산성(해당 일이 고용주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과 해당 기술을 가진 노동자들에 대한 수요와 공급 상황이다.

최근 노동시장의 주요한 특징은 쏠림 현상이 나타나 소득의 격차가 확대되고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 현상이 바로 ‘슈퍼스타 경제학’이다. 일례로 1989년 메이저리그 야구에서 가장 연봉이 높은 팀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평균연봉은 53만 5,000달러로 가장 싼 팀이었던 볼티모어 오리올스 평균 연봉의 5배에 달했다. 그런데 2009년 뉴욕 양키즈의 연봉 520만 달러는 최하위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평균 연봉의 20배에 달한다.

1977년 미국 100대 기업 CEO의 급여는 평균근로자 급여의 약 50배에 달했다. 그로부터 30년 후, 최고수준의 급여를 받는 CEO들은 생산라인에 근무하는 평균 근로자의 약 1,100배에 달하는 급여를 받고 있다.

가격에 대한 역사와 문화, 풍부한 예시

이 책속에는 다양한 가격과 관련된 주제들이 언급되고 있다. 많은 구체적인 예시들은 역사와 경제,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9가지 주제 가운데 여성의 가격과 신앙의 가격, 미래의 가격 등은 요약하지 않았다.

내용이 많기도 하거니와 성차별을 야기할 만한 대담한 내용들과 신앙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만한 내용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투자자는 경제학만 알아서는 결코 안 된다, 역사를 이해해야 하고 문화를 헤아리고 인간의 본성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가격에 관한 책이지만 가격과 관련한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예민수 증권경제연구소장(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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