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경제신문=이해선 기자] “저희는 하루에 적게는 8곳, 많게는 15곳 정도의 거래처(병원)를 방문합니다. 즉 일주일에 방문한 곳만 30~40곳이 되며 만난 의료진 및 환자와 보호자만 해도 접촉한 환자는 1000명이 넘을 것 같습니다. 만약 감염이 발생한다면 거래처에 다시는 못 갈뿐더러 해당 병원 또한 폐업의 상황까지 갈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열심히 일을 하고 많은 거래처에 방문했다는 이유로 실업자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내 대형제약사에 근무 중인 한 영업사원이 익명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업무 특성상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우한폐렴) 감염 우려는 물론 감염이 됐을 경우 거래처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어 향후 실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을 걱정하는 속내가 읽힌다.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중인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국내 역시 연일 불안에 떨고 있다. 가급적 외부 일정을 자제하고 있으며, 감염 위험이 높은 병원의 경우 진료 목적 외 외부인 출입은 금지하는 분위기다. 

실제 서울백병원, 건국대병원 등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최근 ‘제약사와 약품 관련 담당자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단체문자를 전달하기도 했다. 

설 연휴가 끝나고 국내 확진자가 빠르게 확산되며 암젠코리아 등 다국적 제약사를 중심으로 재택근무를 결정하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까지 다국적 제약사 약 15개사가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제약사 중 재택근무를 결정한 곳은 한미약품과 삼일제약 두 곳 뿐이다. 나머지 제약사들은 그저 마스크를 쓰는 것과 개인위생을 독려할 뿐 특별하다고 보일만한 대응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에 비해 국내 제약사들이 상대적으로 감염병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유다.

제약사 영업사원들은 업무 특성상 병원과의 교류가 많다. 실제 확진자나 의심환자가 있는 병원에도 방문할 수 있는 만큼 평소처럼 업무를 진행하다가는 2차 감염자가 될 위험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은 영업사원이 감염된 것을 모르고 업무를 지속했을 경우다. 만약 병원에서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과 접촉했을 시 그는 그도 모르는 사이 ‘슈퍼 전파자’가 될 수 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국적 제약사의 재택 결정에도 불구하고 현장 영업을 강행하고 있는 국내 제약사들은 결국 자사 직원들 뿐 아니라 거래처 마저도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그 어느 쪽의 안전도 담보할 수 없는 '안이한 대응'을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재택근무를 검토 중이라는 다수의 국내 제약사들은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들이 지금 주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설마 ‘슈퍼 전파자’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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