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경제신문=한행우 기자] ‘우리’라는 단어는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필요하지만, 필연적으로 ‘우리’ 바깥의 것을 구분 짓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닌 ‘외주 노동자’는 위험한 업무나 사건·사고 앞에서 ‘기업 바깥의 타자(他者)’로 취급되는 경우가 흔하다.

노동계가 오랜 시간 개탄해 온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다. 노동자가 사망하기라도 하면 그 죽음은 철저히 타자화(他者化)된다.

이번 쿠팡 천안물류센터 사망 사건도 비슷한 양상이다.

지난 6월1일 이 물류센터 조리실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사망했다. 해당 직원은 동원홈푸드 파견업체 아람인테크 소속 조리사로 알려졌다. 청소 시 혼합용액을 사용하면서 ‘클로로포름’에 노출돼 숨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사고 현장에 남아있던 락스와 세정제, 오븐클리너 등을 확보해 섞어본 결과 독성물질인 ‘클로로포름’이 국내 허용치의 3배에 달하는 29.911㎍(마이크로그램)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다.

유가족 역시 고인이 ‘코로나19’ 이후 청소 약품의 강도가 세져 힘들어 했다고 증언한다. 회사가 마스크와 방호복 등 보호장구를 지급하지 않고 독한 약품으로 청소를 하게 했으며 고무장갑, 면장갑, 장화 등 기본적인 작업 도구도 지급하지 않아 자비로 구입해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고인의 남편은 “락스와 세제는 혼합해서 사용하면 안 되는 화학물질이었다”며 “쿠팡과 동원홈푸드, 아람인테크 중에서 단 한 곳이라도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안전한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지 살폈으면 제 아내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사건이 주목 받자 쿠팡은 ‘우리와 무관한 일’이라며 선 긋기에 나섰다.

쿠팡은 8일 자료를 내고 “천안물류센터 식당은 동원그룹이 책임지고 운영하고 있다”며 “이 식당의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 직원 업무분장, 보호장구 지급 등 구체적인 작업 환경은 동원그룹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책임 관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쿠팡만을 당사자로 지목하는 배경이 의심스럽다고도 했다.

그러자 동원그룹은 ‘식당운영은 동원그룹이 아니라, 자회사인 동원홈푸드에서 한다’고 일축했다.

그렇다면 과연 쿠팡은 동원그룹과 자회사 동원홈푸드를 구분하지 못해 굳이 언론 배포용 보도자료에서 ‘동원그룹’을 언급했을까.

자회사(子會社)의 ‘자(子)’는 ‘아들 자(子)’를 쓴다. 사전적 의미는 ‘다른 회사와 자본적 관계를 맺어 그 회사의 지배를 받는 회사’이다. 이런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번 사건을 마치 ‘남 일 보듯’ 하는 동원그룹의 태도는 아쉽다. 두 회사간 자본의 관계는 있으되 책임의 관계는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책임을 넘겨받은 동원홈푸드는 ‘조사 중인 사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만 밝혔다. 

쿠팡, 동원그룹, 동원홈푸드 어디도 ‘이번 일을 계기로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에 위험관리가 되지 않는 사각지대는 없는지 다시 살펴보겠다’고 말하는 곳은 없다. 사후약방문이라도, 의례적인 반성이나마 기대했으나 서로 네 탓하기 바쁘다. 

기업들이 이리저리 책임을 떠넘기는 탓에 이 죽음은 소속이 없다.   

물론 이런 사건들이 기업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을 안다. 사고는 예측불가능하기에 사고이고 모든 위험이 완벽하게 통제되는 것은 아니니 기업들의 고충도 없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고의성 없는 일에 악덕기업처럼 매도되는 것을 경계하는 태도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한가지,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를 외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걸림돌’이 아닌 더 나은 기업으로 나아가는 ‘디딤돌’로 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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