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신당창당론, 1/n 아닌 세력화가 새 정치 성공 열쇠

지난 24일 실시된 4.24재보궐선거 결과로 인해 민주당이 술렁거리고 있다. 국회의원선거 3곳을 비롯해 광역-기초 선거 모두에서 전패한 민주당은 그야말로 침통한 분위기다.

특히 민주당으로서는 이번 재보선이 새누리당 의원들의 불법선거 때문에 치러졌고, 박근혜정부의 인사참사 및 국정원 직원 대선개입 수사 발표 등 다양한 호재가 있었음에도 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뼈아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선거에 앞서 오만한 박근혜정부에 대해 경종을 울려달라며 표를 호소했다. 하지만, 오히려 민주당이 참패함으로써 민망한 상황이 돼버렸다.

민주당의 이 같은 참패는 야권의 정계개편 논의를 활활 타오르게 할 휘발유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민주당은 재보선에 앞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 채 치열한 계파전쟁만을 벌이고 있다는 따가운 질책을 받다 왔다. 박근혜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갖가지 실정을 쏟아냈어도 이에 대한 반사이익조차 전혀 챙길 준비가 안 돼 있었던 셈이다.

그런 가운데,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는 범야권이라는 틀 속에서도 새누리당 허준영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당선의 기쁨을 안았다. 이는 야권 지지층이 ‘민주당엔 철저한 외면을, 안철수엔 새로운 기대를’ 보내기 시작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이번 4.24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의 참패는 곧 안철수에 대한 기대로 직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나아가 안철수 의원의 신당창당과 안철수發 정계개편의 명분을 더욱 강화시키는 지렛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얼굴 들기 힘들어진 민주당, 또 다시 ‘불임정당’ 오명>

전체 유권자 73만 4736명 중 24만 6083명이 투표권을 행사(투표율 33.5%)해 치러진 4.24재보궐선거 결과 새누리당이 완승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국회의원 선거 3곳을 포함해 광역-기초 선거 모두에서 전패하는 불명예스런 기록을 세우게 됐다.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민주당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선거 당일인 24일에도 일부 실무자들만 중앙당에서 개표방송을 시청하는 등 이미 선거에 기대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었다. 하지만 실제 개표 결과 모든 선거에서 패배한 것은 물론이고, 득표 격차 또한 압도적이라는 점에서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선거 당일 당선자가 확정된 이후에도 당에서는 박용진 대변인 명의의 서면 논평 하나만 내놓았을 뿐이었고, 이튿날인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도 박기춘 원내대표만 유일하게 재보선 결과에 대해 언급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이번 재보선 결과를 겸허하고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며 “민주당은 127명 의원들 모두 저마다의 무거운 책임을 또, 그 책임을 감당하면서 처절하게 성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낮고 겸허한 자세로 당의 변화와 뼈를 깎는 혁신에 매진할 것이며 이념논쟁, 계파갈등, 대결정치 등 고질적인 정치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야권의 분열로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강력한 야권의 부활을 위해 민주당이 5.4전당대회부터 바닥을 딛고 다시 일어서겠다”고 짧게 끝마쳤다.

민주당 입장에서야 되도록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넘겨버리고 싶은 선거였겠지만, 문제는 언론이었다. 수많은 언론들이 이번 재보선 결과를 두고 민주당에 대해 ‘불임정당’이라는 뼈아프고 쓰디쓴 평가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에서 531만 표 차이로 패배한 이후 빗발쳤던 ‘불임정당’ 비판을 이번 재보궐선거 결과로 인해 다시 듣게 된 것이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26일에서야 처음으로 공개석상에서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이 있다. ‘패장은 유구무언’이라는 말도 있다”며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문 위원장은 이날 열린 비대위회의에서 이 같이 말하며 “국민 여러분께 그저 죄송할 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모든 책임은 선거를 앞에서 치른 비대위원회에 있다”고 거듭 사과했다.

김동철 비대위원은 “재보선 결과를 놓고 언론이 민주당은 ‘불임정당으로 전락했다’, ‘길 잃은 민주당’, ‘4.24쇼크 민주당’의 표현을 통해 민주당의 오늘의 현실에 대해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것을 보았다”며 “그러나 그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 말했다.

김동철 위원은 이어, “지난 총선과 대선 패배를 통해서 계속 민주당은 국민들께 거듭나겠다고 약속하고 비상대책위 체제를 가동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민주당은 5월 4일 전당대회를 계기로 반드시 거듭날 것”이라고 희망을 놓지 않았다.

민주당의 이 같은 모습에 새누리당에서는 ‘새정부가 승리한 게 아닌, 민주당이 패배한 것’이라는 평가까지 내놓고 있다. 서병수 사무총장은 25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역대 정권 출범 후 첫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승리한 것은 1993년 4월 이후 처음”이라며 민주당을 향해 “공천을 강행하면서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선거에 나갔지만 결국 패배했다. 국민과의 약속을 내팽개쳐버리는 정당이 어떻게 심판받는지 다시 한 번 절감했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서 사무총장은 “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박근혜정부를 경종하고 따끔한 회초리를 들겠다고 했는데 정작 자신들이 받은 꼴”이라고 덧붙여 비판하기도 했다.

<탄력 받는 안철수 대안론, 민주당 패배는 곧 안철수 신당의 신호탄?>

민주당이 이처럼 처참한 몰골이 되자, 자연스럽게 야권의 관심은 안철수 의원에게 집중되고 있다. 무려 60%대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원내에 당당히 입성한 그에게 야권 지지층의 기대가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에 대한 보상심리로 풀이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안철수 의원은 향후 어떤 정치 행보를 보일 것인가? 곧바로 신당창당 플랜에 착수할 것인가? 정치권 안팎의 관심이 온통 안 의원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안 의원은 일단, 선거 승리를 확정지은 직후 기자들에게 “선거 기간 노원주민들의 마음을 얻는데 집중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면서 “일단 주민에 대한 인사를 하고 국회 활동에 대한 준비 기간을 가진 후 숙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선 이튿날인 25일에도 그는 노원지역 주민들에게 당선인사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안 의원은 이날 오전 7시부터 지하철역에서 선거운동을 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길 인사를 나눴고, 쪽방촌과 시장, 상가 일대를 찾아다니며 당선 감사 인사를 올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처럼 우선 여의도 적응과 지역구 챙기기에 집중하고 있는 안 의원은 민주통합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5월 4일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 지형 변화에 대한 구상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의 전당대회를 통한 쇄신 정도를 지켜보고 판단할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에 대한 안 의원 측의 기대는 높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상 내부적으로는 신당 창당에 대한 수순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안 의원 측 관계자는 최근 한 언론과 통화에서 “늦어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이전에 광주를 방문할 가능성이 크다”며 “세력화 방안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진전된 입장을 내놓지 않겠는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광주는 현재 민주당에서 등을 돌려 안철수 신당에 대한 기대치를 가장 높이 갖고 있는 지역으로, 안철수 의원으로서는 이 지역이 사실상 제2의 연고나 다름없는 셈이다. 이 같은 상황에 서울 노원에서 당선된 안 의원이 광주를 방문한다는 자체가 신당 창당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선 당시 안철수 캠프에서 국정자문위원실 부실장을 지냈던 이상갑 변호사도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 시사 발언을 내놓아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와 관련, 이 변호사는 25일 TBS라디오에 출연해 “민주당을 리모델링해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요구받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 많다”며 “특히나 민주당의 심장인 광주·전남의 경우 ‘민주당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 리모델링 수준이 아니라 싹 헐고 다시 짓는 재건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론조사 결과도 최근에 보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안철수 신당이 창당해 후보를 낼 경우 안철수 신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의견이 50%, 민주당 후보 지지가 19%였다”며 “전국적으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민심의 흐름은 비슷한 것 아닌가”라고 신당 창당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10월에도 재보선이 있고 중간 중간 여러 선거가 있기 때문에 과정에서 열심히 노력해 국민의 판단을 받아가면서 힘을 키워가는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안철수, 혼자 힘으로 대선 때보다 더 큰 장벽 넘어설 수 있을까?>

이 변호사의 전망처럼 실제, 안철수 의원의 신당 플랜에서 10월 재보궐선거는 또 하나의 통과의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안 의원은 호남 등을 중심으로 민주당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안 의원은 힘을 키워야만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아직 국회에는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한 그룹이 형성돼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안철수 의원 본인과 무소속 송호창 의원 2명 정도일 뿐이다.

민주당 내에 안철수파가 있긴 하겠지만, 이들이 당장 민주당을 뛰쳐나가 둥지도 없는 안철수에게 안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뛰쳐나가지 않고 안 의원과 접촉면을 늘린다면 그 또한 해당행위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

이 같은 상황에 무턱대고 이번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하게 됐으니 신당을 바로 창당하겠다는 것은 오만에 가깝다. 조금 더 국민적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러기 위해 힘을 모아야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그 계기가 바로 10월 재보궐선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10월 재보선에서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한 측근 세력들이 출마하고, ‘안철수 그룹’에 대한 제대로 된 국민적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여기서 좋은 결과가 나오게 된다면, 곧바로 신당 창당 플랜에 착수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창당된 신당을 바탕으로 내년 지방선거에 대대적으로 나선다면 성공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10월 재보선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안철수의 도전은 결국 또 하나의 실험으로 끝나버릴 수 있다. 따라서 안철수 의원에게 있어서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그가 주창해온 민생 문제 해결과 새 정치를 실현하는 일이다.

기존 정치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구호’성 정치에 그친다면, 그 역시 금방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지고 말 것이다. 원내에 들어왔을 때와 원외에 있을 때의 차이를 처절하게 느끼게 될 수도 있고, 이 과정에서 대선 당시 울분을 토해낼 정도로 느꼈다는 ‘장벽’보다 더 큰 장벽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국민도, 안철수 의원 본인도, 또 다른 누구도 그가 말하는 ‘새 정치’가 어떤 형상을 취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샘플도 업고, 모델도 없는 새 정치를 안철수 의원은 과연 어떻게 실현해낼 것이며, 안 의원이 만들어낸 새 정치를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관건이다.

한국의 정치 특성상 법과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변화되지 않는 뿌리 깊은 문제들이 있다. 국회의원 300명 중에 한 명인 안철수 의원 개인의 힘으로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안철수 의원은 신당창당 여부를 잠시 뒤에 놓고 지금은 ‘새 정치가 먼저냐, 힘을 키우는 것이 먼저냐’부터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보다 더 앞서서는 새 정치를 어떻게 형상화 해내느냐의 문제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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