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요약]

- 정부정책과 산업사이클이 잘 만나야

- 갑의 직장도 순식간에 을로 변할 수 있어

- 갑의 위치에 있을 때 을의 위치를 생각하는 성숙함 필요

여의도 증권가. <출처=cc0photo>

[이길영의 분석코멘트]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아마도 ‘갑을관계’에 있어 ‘갑’들을 지칭할 때 흔히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네 인생도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수많은 ‘갑을관계’로 얽히게 된다. 갑이 을이 되기도 하고 을이 갑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갑은 갑으로 쭉 가고, 을은 을로 쭉 가는 것이 일반적인 삶이다. 최근 들어서는 경기사이클이 짧아지고 전통산업이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갑들이 갑자기 어려워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요즘 문제가 되고 석탄공사와 석유공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초기 산업화 단계에서 석탄공사는 최고의 직장이었으며 갑이었다. 그 바통을 이어받아 30년 이상 화려한 꽃을 피운 석유공사도 최고의 직장으로 갑이었다. 이전 금융권의 3투신(대한, 한국, 국민)도 화려한 갑의 시절이 있었다. 최고의 연봉에다 프라이드도 대단했다. 그러나 IMF(1997.11)를 당하면서 을 중에 을로 보던 증권회사가 한 순간 점령군이 되어 3투신(대한, 한국, 국민)을 모두 M&A 했으니 심적 충격은 대단했을 것이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IMF(1997.11) 전까지 국내 7대 종합상사의 위상도 대단했다. 소위 명문대생 중에서 경영·경제를 전공하고 종합상사에 입사하는 것은 출세의 지름길로 여겼으며, 중소 하청업체에게는 갑 중에 갑이었다. 그러나 이 화려했던 상사맨들도 글로벌 무역환경이 온라인화 되는 등 큰 변화를 겪으면서 뒤안길로 물러났다. 지금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체결로 과거처럼 저돌적으로 밀어 붙일 수도 없는 수출환경으로, 과거의 영웅담은 대포집의 안주로나 등장하는 현실이다.

문제는 갑의 포지션에 있다 갑자기 을이나 병으로 포지션의 변동을 겪게 될 경우 본인도 당황스럽겠지만 주변의 사람들이 본인을 대하는 자세에서 충격을 받는다. 예전에 그렇게 깍듯했던 ‘김과장’이 이제는 데면데면하기 시작한다. 머리를 숙이는 각도도 과거의 15도 이상에서 이제는 5도 이하로 들리게 된다. 이는 본인의 자리(갑)를 예우했지 한 개인을 예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도 과거 갑과 을을 오간 몇 번의 경험이 있다. 솔직히 갑보다는 을의 입장에 많다보니 겸손과 머리 숙임이 습관화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을의 입장에서 원치 않게 직장을 잃기도 했다. 절박한 심정으로 갑에게 사정을 부탁한 적이 한 두번 있었으나 성공한 적은 없었다. 그러다 한 번은 유명 자산운용사의 핵심 멤버로 참여하면서 갑의 포지션을 잡은 적이 있었다. 과거의 갑들이 을이 되어 몰려들었으나 그저 웃으면서 인사와 악수를 했을 뿐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은 열리지 않았다.

종합해보면 세상이 빠르게 흐르고 있다. 오너가 아닌 이상 자본주의에서 필부필부들의 포지션 논쟁은 부질없는 짓이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말이다. 경기사이클이 극도로 짧아진 요즘 10년 가는 갑도 없으며, 10년 가는 을도 없다. '인과응보'라는 말도 있다. 갑의 위치에 있을 때 먼저 베풀면 을의 위치가 되어서도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이 같은 이치는 수많은 역사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역지사지의 자세로 임할 때 좀 더 성숙한 사회가 열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 어려운 시절이다. 서로 돕고 어깨동무 하는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참 세월이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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