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률 부족의 심각성 알리고, 대책을 실현할 때

 

(한국정책신문=김인영 기자) 세계는 식량과의 전쟁 중이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폭염·홍수 등의 기후변화로 세계의 농산물 생산이 위기에 처했다. 지난 2010년, 세계 3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가 130년 만의 가뭄을 겪으면서 밀 수출이 중단되자 세계의 밀 가격이 상승하면서 수입국들의 관련 식품 물가 역시 동반상승했다. 바야흐로 ‘애그플레이션’(agflation : 농업(agriculture)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농산물 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을 의미)이 국가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따라서 각국의 정부들은 저마다 자국의 식량안보 제고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여타의 물품과는 달리 생존과 직결되는 식량의 원활한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식량폭동 등 엄청난 혼란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국내 식량의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국내 식량자급률은 현재 얼마나 될까?
 
▶ ‘곡물자급률’이 실제 자급률
 
정부가 27일(금)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국내 식량자급률(사료용 소비 제외)과 곡물자급률(사료용 소비 포함)은 각각 49.8%와 24.0%로 나타났다. 식량자급률은 사람이 먹는 식용곡물(쌀, 밀, 옥수수, 콩 등)의 국내 소비량 중 국내 생산량을 말한다. 곡물자급률은 앞의 개념에 소, 돼지 등이 먹는 사료용 곡물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우리의 식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식량자급률은 곡물자급률인 24%가 맞다. 사람들의 식습관 변화로 인해 한 끼 식사 시 육류 소비가 늘면서, 가축의 사료공급까지 고려한 곡물자급률이 좀 더 올바른 수치로 봐야한다. 자급률을 측정하는 세계 여러 나라들도 정부가 발표한 식량자급률(사료용 소비 제외)을 보조 수치로만 볼 뿐, 해당 국가의 식량자급률 절대 수치로 보지 않는다.
 
또한, 각 식품에 함유된 칼로리량을 기준으로 산출하는 칼로리(열량)자급률이 있다. 국내 칼로리(열량)자급률은 40%대에 달하지만, 가령 가축의 칼로리 계산 시 에너지 열량의 원천이 수입산 곡물에 있는 경우에는 자급률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려워 보조 수치로만 활용하고 있다.
 
금액기준 자급률(식품 국내 공급액 중에서 국내 생산액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다소 예상보다 높은 수치를 나타내더라도 수입산 식품보다 국내산 식품이 평균적으로 값이 비싸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식품 공급량은 수입식품 공급량에 비해 턱없이 모자랄 것으로 가늠할 수 있다.
 
결국, 정부가 발표한 자급률 중 곡물자급률을 우리의 식량자급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바꿔 말해, 우리가 연간 소비하는 식량 곡물 약 2000만톤 중 해외로부터 1500만톤 가량 이상을 수입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 우리의 식량자급률, 얼마나 심각한가?
 
현재 식량자급률이 24%라 할지라도, 주요 농산물인 ‘쌀’을 제외하면 곡물자급률은 5% 내외에 불과하다. 국내 농업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고, 쌀 재배 면적이 전 경지 면적의 60%, 쌀 재배 농가가 전체 농가수의 75%에 이르는 점을 감안한다면 국내 식량자급률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작년 기준, 밀은 전체 소비량의 99.3%, 옥수수는 99.2%, 콩은 88.7%를 수입했다.
 
OECD-FAO(세계식량농업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OECD 상위 30개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또한, 한국은행이 입수한 미국 농무부의 세계 130개국 밀·콩·옥수수 3대 곡물자급률 자료에서 한국은 고작 1.6%의 자급률을 기록해 세계 최하위권(하위 16위)에 자리했다. 이는 중동의 리비아(4.8%)나 요르단(1.9%) 보다도 낮은 순위다. 극심한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린다고 알려진 북한의 자급률이 75% 수준으로 나타나, 국내 식량자급률의 심각한 수준을 대변했다.
 
식량자급률 상황이 이러하니, 식량안보 수준은 말할 나위없다. 2013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식량안보 지표 개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기준 한국의 식량안보 수준은 G20(주요 20개국)에서 EU를 제외한 19개국 중 16위로 평가받았다. 연구원은 식량의 가용성, 접근성, 안전성 등 3개 분야 19개 세부지표를 선정해 평가했다. 2011년 2월, 삼성경제연구소도 ‘글로벌 식량위기 시대의 신식량안보 전략’ 보고서에서 위와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식량을 자급하지 못하고 대부분을 수입한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줄을 외국에 맡기고 있다는 뜻이다. ‘많은 외국 재화를 확보해 수입하면 되지 않는가?’라는 사고는 매우 근시안적인 것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시기와 같이 식량거래의 중단이나 식량무기화가 발생한다면, 애그플레이션의 발생으로 국가 경제가 무너지게 된다. 결국 커다란 사회 혼란을 막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낮은 식량자급률은 여러 방면에서 문제를 야기한다. 우선, 외국 식량에 크게 의지하는 만큼, 외국에서 생산되어 보관과 장거리 수송을 거친 먹을거리가 농약이나 방부제 등으로 식품안전을 저해할 수 있다.
 
또한, 낮은 식량자급률은 국내 농축산업을 더욱 축소시킨다. 수입식량에 의존한 식생활은 외국 식자재 선호로 국내 농산물 소비를 줄이고, 시간이 갈수록 국내 농업의 기여도나 역할을 과소평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줄어든 관심은 결국 농업인들의 의지까지 약화시켜, 생산인구 고령화·FTA 개방으로 인한 수입농산물 증가 등의 악재와 겹쳐 국내 농업을 무너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의 식량 수입이 특정국이나 곡물 메이저 기업에 편중돼 있는 점도 문제다. 식량 수입은 카길, ADM 등 4대 곡물메이저 기업과 일본계 종합상사로부터 60% 이상을 수입하고 있다. 해당 국가와 기업들이 식량을 무기로 높은 세금을 책정한다면, 이는 고스란히 물가에 반영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 또한 장기 공급계약보다는 필요시 최저가 입찰 방식에 따라 식량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어 가격 위험에 크게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 식량자급력 부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대책을 실현할 시점
 
올해 초, 핵전쟁의 위협을 알리는 ‘지구종말시계(Doomsday Clock)’가 자정 3분 전으로 앞당겨졌다. 자정은 지구종말을 의미하며, 작년 5분 전에서 2분이나 빨라진 것이다. 과학자들은 시간이 앞당겨진 이유로 전세계적인 핵무기 현대화와 통제되지 않은 기후변화를 꼽았다. 전쟁과 기후변화 모두, 국가의 식량자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태가 이렇듯 심각한 국면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식량 정책은 다소 느슨해 보인다. 지난 2011년, 정부는 ‘안정적인 식량 생산을 위한 장기 계획’을 발표하며 2015년과 2020년까지의 곡물자급률을 각각 30%, 32%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내 곡물자급률은 24%에 머물며 목표치에 근접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시장 경제하에서 정부가 자급률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시장경제 논리에 배치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식량정책 수립에 있어 가이드라인으로서의 성격을 가질 수 있고, 국민 경제지표로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고 보는 측이 우세하다.
 
분명 한국의 식량자급력 부족 원인은 부족한 농지 면적에 있다. 국민 1인당 90평 정도에 불과한 경지면적으로는 곡물자급률을 높이는 것에 한계점으로 작용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최정섭 前원장은 지난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생산 부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보다 소비 부문에서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쉽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바 있다.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젊은층이 수입식품을 선호하면서 국내 주생산 품목인 쌀 소비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
 
同 인터뷰에서 농협관계자는 “한국처럼 곡물 자급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세계 곡물시장에 대한 정보수집 및 외교, 자금 활용을 통해 미리 곡물을 확보해놓을 경우, 급박한 식량 위기사태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며, 선물시장을 활용하자는 주장도 제기했다.
 
김종덕 경남대 교수는 칼럼을 통해 바다 자원을 활용한 식량자급률 제고와 이모작을 활용한 조사료 생산 등을 제안했다.
 
이 외에도 관련 전문가들은 ▲쌀 소비 촉진을 위한 식품 개발 ▲식량안보 비축 확대 ▲조기경보시스템 구축 ▲해외농업개발 추진 ▲축산농가 사료비 보조 ▲조사료 생산 면적 확대 ▲대체사료원료 개발 ▲사료곡물 관세 인하 조치 ▲가공업계 보조를 통한 식료품가격 억제 등의 정책 실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 역시, 이번 식량자급률을 발표하며 “금년에 답리작 활성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식량자급률 제고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장 우선 시 돼야 할 사항은 현재 한국의 부족한 식량자급률 상황을 알려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에 있다. 이를 통해 국내 농축식품 상품의 소비가 활발히 이뤄져야, 세계시장에 맞서는 농업인 경쟁력 향상 기반이 구축되는 것이다.
 
‘식량과의 전쟁’이라는 표현이 진부하게 느껴질 만큼,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직면해 있다. 컴퓨터나 자동차 없이도 인류는 수많은 시간을 지내왔다. 그러나 식량이 사라진다면 그 누구도 생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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