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는 투자자들에게 권하는 다섯 권의 책
가치투자의 명가 신영증권 김학균 리서치센터장

1996년 증권회사에 입사한 이후 이십여 년간 시장을 보며 살아왔다. 투자의 세계는 매우 흥미롭다. 나의 관찰로는 많이 안다고 해서 꼭 투자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르는 이는 거의 반드시 투자에 실패했던 것 같다. 기업에 대해서건, 시장에 대해서건 모르고 투자하는 이가 한두 번 요행으로 돈을 버는 경우는 봤지만 지속성을 가지지는 못했다.

물론 지식이 투자의 성패를 결정하는 모든 요인은 아니다. 운과 결단력, 유연한 사고, 투자하는 돈의 성격 등 다양한 요인들이 결과에 영향을 준다. 다만 지식 없이 투자에 성공할 수는 없다. ‘앎’은 투자의 성공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성공적 투자자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다고 본다. 궁극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앎’의 범위를 끊임없이 넓히는 투자자들만이 성공할 수 있다. 독서는 앎을 확장할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다. 큰 감명을 받았던 책 몇 권을 소개한다.

내가 아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 블랙스완(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 동녘 사이언스)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담고 있는 책이다. 검은 백조를 뜻하는 블랙스완(Black Swan)은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하는 위험을 의미한다. 확률은 매우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위험이 블랙스완이다. 투자는 미래를 예측하는 게임이지만, 아쉽게도 그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예언이 아닌 확률에 입각한 예측을 할 뿐이다. 저자는 예측이라는 행위에 내재돼 있는 인간의 편향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나심 탈레브는 인간들이 알고 있는 지식의 증가보다 지식에 대한 확신이 더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차이를 인지적 오류라고 정의했다. 투자자들이 알고 있는 것을 과대평가하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불확실성의 영역에 대해서는 과소평가 함으로써 종종 실패를 맛본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나심 탈레브는 지진의 발생확률은 알 수 없지만 샌프란시스코에 그 지진이 발생할 경우 어떤 결과가 생겨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사건의 ‘알 수 없는’ 확률을 계산하는 데 힘을 쏟기 보다는 ‘알아낼 수 있는’ 결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불확실성에 대한 중심 개념이다. 그는 투자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결과를 완화시키는 것뿐이라고 조언한다. 그래서 그는 포트폴리오를 예측하지 못할 시장 붕괴를 피하지 않고 그에 노출되는 쪽으로 짜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심 탈레브는 말한다. “시장이 붕괴할 확률은 나도 계산할 수 없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보험에 가입하거나 덜 위험한 증권에 투자함으로써 손실을 줄이는 것이다”

이 책은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정점에 달했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출간됐기 때문에 금융위기를 예언한 책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나심 탈레브의 조언대로 급격한 변동성 확대에 대비하는 포지션을 구축했던 블랙스완 펀드는 큰 낭패를 겪었다.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등에 힘입어 글로벌 증시가 10년 강세장을 구가하면서 시장 변동성은 2018년 초까지 지속적으로 축소됐기 때문이다. 블랙스완의 경고처럼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터진 것이 아니라 평온한 시기가 예외적으로 길게 지속되면서 글로벌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사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금융위기 이후 10여 년은 ‘위험을 더 많이 지는 자’ 가 이기는 게임의 장이었고, 위험 관리보다는 과감하게 ‘지르는 자’의 수익률이 극대화됐던 시기였다.

그렇다고 블랙스완의 조언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장기간의 평온한 시장 흐름이 예외였을 뿐, 시장은 4~5년에 한번씩 큰 홍역을 치르곤 했다. 최근 30년을 돌아보면 미국 저축대부조합 파산(91년), 동아시아 신흥국 외환위기(97년), IT버블 붕괴(00년), 미국 분식회계 스캔들(02년), 리먼브라더스 파산(08년),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11년) 국면에서 시장의 변동성이 치솟았다. 또한 장밋빛 전망 일색이었던 2018년에도 주가는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한 바 있다. 평균 4년에 한번씩 세상은 요동을 쳤고, 변동성에 베팅한 투자자들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셈이다.

어찌 보면 블랙스완은 예측에 대한 책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의 태도(attitude)에 대한 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늘 의심하고, 특히 전망에 쏠림이 있을 때 다수의 견해가 틀릴 가능성을 생각해 보고, 어떤 상황에서라도 내 포지션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리스크만 지라는(개인투자가의 경우에는 신용이나 미수 등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를 자제하라는) 조언은 어느 상황에서도 떠올릴 가치가 있다.

투자에 관한 경구(警句) 모음집 – 투자에 대한 생각(하워드 막스 / 비니지스 맵)

하워드 막스는 투자회사인 오크트리캐피털 매니지먼트(Oaktree Capital Management)의 설립자이자 CEO이다. 오크트리의 운용 규모는 1,0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하워드 막스 스스로도 19억 달러의 자산을 소유한 성공한 투자자이다.

이 책은 투자의 현인(賢人)이 전해주는 경구로 가득 찬 책이다. 투자하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봄직한 이슈들에 대해 매우 쉬운 화법으로 의견을 전한다. 과장하거나, 호들갑스럽지 않지만, 결코 무겁지 않다. 흡사 오랫동안 시장에서 분투하면서 도(道)를 깨우친 거장의 지혜를 엿보는 듯한 느낌이다. 나 역시도 글과 말로써 의견을 전하는 투자 조언자이지만, 하워드 막스는 급이 다른 통찰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장이 어려울 때, 자신의 예측이 너무 잘 맞아 우쭐한 기분이 들 때, 심심할 때 등 언제라도 이 책을 펼치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 번 읽어도 좋을 책이다.

하워드 막스는 ‘심층적으로 생각하라’를 시작으로 투자에 대한 원칙 스무 가지를 글로 풀어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열 다섯 번 째 중요한 원칙으로 제시된 ‘내가 아는 한 가지는 내가 모른다는 것이다’ 라는 장이다. 블랙스완의 강조점과 통하는 점이 있지 않은가.

이 책에 나오는 한 단락을 옮긴다. ‘탐욕과 낙관주의가 한데 어우러지면, 사람들은 높은 리스크 없이 높은 수익을 낼 것이라고 희망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유행하는 주식에 비싼 가격을 지불하며, 혹시 가치가 조금이라도 더 상승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주식을 보유하는 행동을 계속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자신들의 기대가 비현실적이었고, 리스크가 무시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한번 책을 사서 읽어 보시라. ‘투자에 대한 생각’을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면, 작년에 번역된 ‘투자와 마켓사이클의 법칙(하워드 막스 지음)’도 함께 읽어보기를 권한다.

족집게 분석가가 전해주는 ‘예측 행위’ 그 자체에 대한 책 – 신호와 소음(네이트 실버 / 더퀘스트)

저자인 네이트 실버는 금융시장에서 일하는 이가 아니다. 통계학을 기반으로 광범위한 예측 행위를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네이트 실버의 이력은 매우 흥미롭다, 자신이 좋아하는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들의 성적을 예측하는 시스템인 페코타(PECOTA)를 개발해 유명세를 탔고, 통계적 기법으로 카지노에서 1만5천 달러를 따고 회사를 그만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1만5천달러라면 우리 돈으로 2천만 원이 좀 안 되는 금액인데, 이 정도로 회사를 그만두는 건 오버액션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네이트 실버는 스스로를 잘 아는 드문 인물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포커판에서 수십만 달러를 땄다니 말이다.

이후 네이트 실버는 다방면에 걸친 예측을 전업으로 하는 전문가가 됐다. 정치 예측에서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50개 주 중 49개 주의 결과를 맞췄고, 총선에서는 상원 당선자 35명 전원을 맞췄다. 이후 미국 종합방송사인 ABC와 스포츠 채널 ESPN에서 정치, 경제, 스포츠 등의 영역에서 다양한 예측을 하고 있다.

신호와 소음은 예측 행위 그 자체에 대한 책이다. 주가 전망은 이 책에서 다루는 다양한 분야 중 하나일 뿐이다. 정치와 야구, 기상, 지진, 전염병, 체스, 포커, 지구온난화 등 예측 대상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이 책을 읽으면 네이트 실버처럼 족집게 분석가가 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이 책에는 족집게가 되는 방법은 나와 있지 않다. 많은 가능성과 제약 조건을 고려함으로써 예측의 확률을 높이는 지난하고 정교한 작업에 대한 서술이 있었을 뿐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의 어려움, 예측의 한계, 예측하는 이가 가져야 할 애티튜드(attitude)로서의 겸손함 등이 이 책에 담겨 있었다.

네이트 실버는 2016년 미국 대선 결과를 맞추지 못했다. 힐러리 당선을 예상했지만 백악관에 입성한 사람은 트럼프였다. 그러나 2016년 대선 결과가 ‘신호와 소음’이라는 책이 가지는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신호와 소음’은 원래 예측이라는 행위가 매우 큰 불확실성에 노출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내가 족집게다’라고 주장하는 제목으로 도배돼 있는 온갖 투자 지침서들은 얼마나 경박한가? 이런 부류의 책들이야 말로 신호가 아니라 소음이 아닌가 말이다.

글로벌 투자에 대한 통찰 – 애프터 크라이시스(루치르 샤르마 / 더퀘스트)

제목 유감이다. 이 책의 원저는 ‘The Rise and Fall of Nations’이다. ‘흥하는 나라와 쇠하는 나라’ 정도로 번역하는 게 좋았을 것 같다. 애프터 크라이시스는 언뜻 경제와 시장에 대한 비관론을 설파하는 책 같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글로벌 투자를 다양한 앵글로 바라보는 책이다.

루치르 샤르마는 모건스탠리의 최고 글로벌 전략가(Strategist)이자 신흥시장 총괄 대표이다. 미국 메이저 금융기관의 신흥시장 전문가인 셈이다. 제목은 유감이지만, 책의 내용은 매우 좋다. 신흥 시장 투자의 지침서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은 구체성이다. 신흥 시장 투자에서 고려해야 할 내용들을 꼼꼼하게 다룬다. ‘인구’, ‘정치’, ‘불평등’, ‘규제’, ‘지정학’, ‘물가’, ‘통화가치’, ‘부채 규모’ 심지어는 ‘언론 보도’ 등 다양한 앵글을 통해 투자하기 좋은 국가와 투자를 피해야 할 국가의 유형에 대해 논의한다. 한국의 금리는 너무 낮고, 주식시장은 장기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 고착화에 대한 우려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투자자들은 이 땅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성장’에 대한 욕구를 미국 기술주와 베트남 주식, 브라질 채권 투자 등을 통해 발현하고 있다. 바야흐로 글로벌 투자의 시대이다. 해외 투자에 있어 지침서가 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재미있게 읽는 금융의 현대사 – 거대투자은행1,2 (구로키 료 / 펄프)

이 책은 두 권으로 구성돼 있다. 페이지는 두 권 합쳐서 1,370 페이지. 그러나 주눅들지 마시라, 페이퍼팩으로 나온 이 책은 술술 읽힌다. 또한 놀랍게도 소설이다. 80년대부터 시장에서 활동해 온 일본 금융인의 눈으로 본 현대 금융의 모험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소설이지만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다뤄지는 내용이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89년 일본 주식 버블의 붕괴, 94~95년 신흥국 위기, 98년 헤지펀드 LTCM 파산, 2000년대 IT 버블 붕괴 등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야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사에 가까운 서술이다.

시간이 충분히 지나야 역사가 되는 법. 그렇기에 가까운 현대사, 특히 세계 금융의 현대사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희미해진다. 이 책은 시장을 중심으로, 현대 금융사를 매우 재미있게 정리해 놓은 책이다.

아쉬운 점은 2012년에 출간된 이 책이 절판됐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중고서점에서라도 구해 보시기를 권한다. 읽는 재미를 느끼면서 현대 금융사에 대한 지식을 동시에 쌓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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