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제국의 몰락, 배리 아이켄 그린 지음, 북하이브, 2011
달러는 세계 최강통화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세계의 기축통화 미국 달러화
세계의 기축통화 미국 달러화

앞서 이종우 주식평론가의 글 ‘혼돈의 장세, 책을 권하다(1)’에서 추천한 책 가운데 하나인「달러제국의 몰락」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그 이유는 달러의 미래가 궁금하기 때문이고 동시에 이 책이 절판이기 때문에 핵심내용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어떤 통화가 강세인지를 보면 그 나라의 국력을 알 수 있다. 당연히 현존하는 최강 통화는 미국 달러화다. 달러화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해가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파운드화가 몰락하면서 세계 최강통화로서의 자리를 차지했다.

달러도 몇 차례 위기가 있었다. 1930년 초에는 대공황으로 미국경제가 크게 흔들렸고 1970년대는 달러를 금과 더 이상 교환해주지 않겠다는 ‘금태환정지 선언’이후 달러가치에 심각한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가 원인이 됐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달러는 심각한 타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안전자산으로 간주되며 글로벌 NO.1 기축통화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 책 「달러제국의 몰락」은 앞으로 달러가 최고통화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한 마디로 “그렇지 않다.”이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이고 미국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대표적 국가이다. 달러의 위상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다만 저자는 미국 달러의 독주체제에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경쟁후보는 유로화와 위안화다. 가까운 미래에 달러가 결코 추락하거나 퇴장하지는 않겠지만 국제통화의 자리가 하나뿐이라는 믿음은 영원하지 않으며, 복수의 국제통화가 공존하는 시대가 올 수 있음을 예언하고 있다.


◆ 달러제국의 몰락

-배리 아이켄그린 지음, 김태훈 옮김, 북하이브, 2011.

(원제:Exorbitant Privilege, 2011)


과도한 특권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넘었지만 최근에는 세계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3퍼센트에 불과하다(2011년 기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무역거래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통화는 달러다. 달러를 이용하는 외환거래의 비중은 85퍼센트에 달한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고의 60퍼센트 이상을 달러표시 채권으로 쌓아두고 있다.

미국의 국민과 기업들은 이러한 달러의 위상 덕분에 상당한 혜택을 누린다. 첫째, 환율변동에 따른 리스크나 비용이 들지 않는다. 미국인 관광객은 전 세계 어디서나 자국의 화폐 달러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기업들은 환율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피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세뇨리지(seignorage)’라고 불리는 화폐발행 이익이다. 다른 나라들은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에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화폐를 찍어서 물건의 대가로 지불하면 된다. 세 번째, 해외 기업과 은행들은 미국의 화폐뿐 아니라 채권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미국입장에서는 낮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하고 조달한 자금으로 소비나 투자 등에 활용할 수 있다. 프랑스 재무장관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미국이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을 누린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특권’은 이 책의 원제목이기도 하다.

달러의 데뷔

미국에서 화폐가 발행된 것은 독립전쟁 중 미국 의회가 차용증서에 해당하는 대륙지폐를 발행하면서 부터이다. 의회는 1785년 미합중국의 화폐단위를 달러로 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1792년에는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주도하게 화폐주조법이 만들어져 공식적인 미국의 화폐, 달러가 탄생한다.

달러가 국제금융시장에서 자리를 잡게 된 계기는 미국의 금융규제 완화와 중앙은행의 설립이었다. 미국은 은행들에게 해외거래를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금리를 낮추어 뉴욕으로 국제자본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올드리치 상원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월가 금융계의 실세들이 주도한 미국의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의 탄생은 국제금융시장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격상시켰다.

달러화가 영향력을 키우는 동안 세계최고 강대국인 영국경제와 파운드화는 추락하기 시작한다. 경제사정이 악화하면서 파운드 가치는 계속 절하됐다. 결국 영국은 금본위제도를 포기했고 여전히 금과 연계된 통화인 달러화의 가치는 상승했다.

달러의 지배력 강화

미국의 명실상부한 강대국으로 부상한 것은 역시 2차 대전 이후다. 2차 대전을 통해 국력이 향상된 나라는 미국뿐이었다. 미국은 GATT와 IMF체제를 통해 세계무역질서를 주도했다. 금융시장에서는 온스당 35달러에 미국 달러를 언제든 바꾸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이른바 달러중심의 브레튼 우즈체제를 통해 시장을 지배했다.

문제는 금의 채굴량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1964년까지는 소련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규모 금광이 발견돼 충분한 금이 시장에 유입되었다. 하지만 1965년부터 금 공급이 줄어들었고 달러를 계속 발행해야 하는 미국의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다. IMF를 통해 특별인출권(SDR)이라는 일종의 대체통화를 만들었지만 실효성은 떨어졌다.

결국 1971년 8월 닉슨행정부는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줄 수 없다는 ‘금태환정지 선언’을 하게 된다. 이로써 전후 미국이 만들어 놓은 브레튼우즈 체제가 종료되고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은 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하게 된다.

줄어들지 않는 달러수요

금태환정지라는 ‘폭탄선언’은 달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제 달러는 추락할 일만 남은 것으로 보였다. 뉴욕타임즈는 “달러는 세계적으로 부실한 통화로 인식되고 있다.”고 썼다. 타임지는 “14개월 만에 자국통화를 두 번이나 절하하는 것은 삼류국가들이나 하는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달러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각국정부가 여전히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보유고에 달러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미국정부의 노력(로비)에 의해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석유거래에 달러화를 사용하면서 달러에 대한 수요는 지속됐다. 이후 첨단기술산업 중심의 신경제 시대가 도래 하면서 미국경제는 지속성장했고 달러는 국제통화의 최강자 자리를 지켜냈다.

 

유로존의 단일통화 유로(EURO)
유로존의 단일통화 유로(EURO)

경쟁자 ‘유로의 등장’

달러화의 첫 번째 대항마는 유로화다. 유럽 국가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통합이 또 다른 비극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유럽의 경제통합과 단일통화인 유로의 등장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프로젝트라고 여겨지고 있다. 유럽연합은 매우 험난한 과정과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 후 결국 1999년 유럽단일통화인 유로화를 탄생시켰다.

유로존은 미국에 필적한 만한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통화다. 반면 약점도 가지고 있다. 우선 영국을 단일통화시스템에 포함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통화동맹의 규모를 키운 것도 유로존의 실수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참여국가를 늘리다 보니 구조적으로 부채가 많은 국가들을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경쟁자 중국

두 번째 경쟁자는 중국이다. 중국은 엄청난 경제성장과 막대한 달러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위안화의 국제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위안화의 위상을 높이려면 자본시장을 개방하고 풍부한 유동성을 제고해야 한다. 결국 상품거래뿐 아니라 금융거래에 있어서도 자유롭게 위안화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이다. 또한 중국정부가 정말 그렇게 하려고 하는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국제통화를 꿈꾸는 중국 위안화
국제통화를 꿈꾸는 중국 위안화

달러는 추락할 것인가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는 다시 한 번 달러를 위기로 몰고 갔다. 게다가 미국정부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빚을 지고 있다. 달러의 가치는 손상을 입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달러에서 다른 통화로의 대규모 이동이 일어날 것이란 우려도 커졌다.

이러한 주장의 유일한 문제점은 실제로 달러의 국제적 역할과 영향력이 거의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거래에서 다른 통화의 사용은 의미 있게 늘어나지 못하고 있고 외환시장에서도 달러의 지위는 굳건하다.

그렇다면 달러의 몰락에 대한 예측이 실현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여전히 미국은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며 세계 최대의 금융시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른바 '현직 프리미엄(기존의 달러 사용관행)’까지 가세해 달러의 기세는 꺽이지 않고 있다. 이제 결론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와 가장 유동성이 풍부한 금융시장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는 달러는 계속 우위를 유지할 것이다.

‣통합경제규모가 미국에 필적하는 유로는 특히 인접지역에서 영향력을 강화할 것이다. 위안화는 가까운 미래에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높여갈 것이다. 그밖에 주목해야 할 통화로는 인구가 많고 경제규모가 커지고 있는 인도의 루피와 브라질의 헤알화 등이다.

‣이러한 변화가 달러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달러는 앞으로 치열한 경쟁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예민수 증권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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