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4.0, 아나톨 칼레츠키 지음, 2011.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탄생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최근 들어 조직과 시스템, 기술의 국면전환을 숫자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정부 3.0, 인더스트리 4.0, 안드로이드 6.0 등이 대표적이다. 이 책은 언론인이자 칼럼니스트인 칼레츠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후 자본주의의 패러다임 변화를 예견한 책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초래한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탄생과 특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원제목인 ‘The Birth of a New Economy’가 이를 잘 나타내고 있다. 국내에서는 자본주의 4.0이란 제목으로 출판이 됐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당시 언론에서는 1930년대 대공황에 필적할만한 엄청난 위기로 금융위기를 묘사했다. 금융인들의 도덕적 해이와 정부역할의 부재 등으로 자본주의가 곧 결딴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위기는 빠르게 진화됐다. 세상은 끝나지 않았고 자본주의는 살아남았다. 저자는 위기를 기회삼아 ‘전보다 더 성공적이고 생산적인 새로운 자본주의’가 생겨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제 자본주의의 진화과정을 따라 가보도록 하자.


◆자본주의 4.0

-아나톨 칼레츠키 지음, 위선주 옮김, 컬처앤스토리, 2011

(원제: The Birth of a New Economy, 2010)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자본주의는 다음의 세 단계를 거쳐 진화했다.

자본주의 1

아담 스미스와 해밀턴에서 레닌, 후버, 히틀러까지의 시기.

영국과 미국의 정치, 경제 사상의 지지를 받은 제국주의 강대국 중심의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1776년부터 1920년대 까지 약 150년간 이어졌으며 자본주의 1.0, 1.1, 1.2, 1.3의 소규모 변화를 겪었다. 자본주의 1.0에서는 경제와 정치가 거의 상관이 없는 활동이라고 여겨졌다.

-자본주의 1.0: 1776년 미국 독립선언, 아담스미스의 국부론~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패배

-자본주의 1.1: 1820~1849년

-자본주의 1.2: 1848~1849년, 유럽 혁명, 곡물법 폐지, 항해조례~1860년대 후반 미국 남북전쟁, 보불전쟁.

-자본주의 1.3: 1870년대~1914년, 미국의 대호황기 혹은 2차 산업혁명 시기

-자본주의 1.4: 1917~ 1932년,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 미국 대공황, 자본주의의 위기

자본주의 2

루스벨트와 케인즈에서 닉슨과 카터까지의 시기.

자본주의 2.0은 뉴딜정책과 함께 시작돼 케인즈 주의의 확산과 전후황금기를 거쳐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 시작되면서 막을 내린다. 대략 40년간의 시간동안 생명을 유지했다. 이 시기에 경제는 실질적으로 정치의 한 분야가 되었고, 정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경제이론가와 정치지도자들은 시장이 잘못될 때가 많으며 정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불안정한 시장을 통제하고 길들여 경제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2.0: 1931~1938년, 금본위제도의 폐지와 미국의 뉴딜정책

-자본주의 2.1: 1939~1945년, 정부주도의 군국주의

-자본주의 2.2: 1946~1969년, 케인즈 주의에 따른 황금기

-자본주의 2.3: 1970~1980년, 인플레이션, 에너지 위기, 전후 금 기반 통화시스템의 붕괴

자본주의 3

대처, 레이건, 밀턴 프리드만에서 부터 폴슨, 그린스펀까지의 시기.

1980년대부터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까지의 약 30년의 기간으로, 이 시기에는 경제를 정치의 한 분야로 다루지 않고 오히려 정치를 경제의 한 분야로 다루었다. 지도자들은 정부는 언제나 비효율적이고 대체로 잘못된 경우가 많으므로 똑똑한 시장이 부패한 정치인들을 다스리고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 3.0: 1979~1983년, 초기 통화주의와 노동조합의 대립

-자본주의 3.1: 1984~1992년, 볼커, 그린스펀, 대처-레이건 호황기

-자본주의 3.2: 1992~2000년, 대 안정기

-자본주의 3.3: 2001~2008년, 그린스펀과 부시 대통령 체제의 시장근본주의 시기

자본주의 3의 붕괴이유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 정부가 역할을 맡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른바 시장근본주의자들의 자멸이다. 당시 미국 정부가 저지른 중대한 실수는 다음의 3가지다. 첫째 미국정부는 시가평가제 도입 등으로 금융규제를 지나치게 완화했다. 두 번째 2008년 봄과 여름 석유와 식량가격에 심각한 투기가 발생했는데 미국 정부는 시장이 항상 옳다는 거의 종교적인 신념에 의거해 시장에 개입하지 않았다. 세 번째는 가장 큰 실책으로 신용경색이 시작되었을 때 미국 정부가 금융시스템에 직접 개입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미국 정부의 시장근본주의(시장만능주의)와 이에 따른 금융기관의 파산, 효율적 시장에 대한 불신, 금융인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난 등과 함께 자본주의 3은 2008년~2009년에 막을 내린다.

자본주의 4.0과 미래

그렇다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자본주의 4는 어떤 모습을 띄게 될 것인가?

적응성 혼합주의

자본주의 4.0은 명백하게 혼합경제가 될 것이다. 혼합경제라 함은 정부와 시장이 대립관계가 아니라 동반자 관계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적응적이라는 말은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제도적 구조, 규제, 경제원칙들을 기꺼이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말한다. 모든 시스템이 더 유연해져야 한다. 자본주의는 부러지지 않고 구부러졌기 때문에 생존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4.0의 정치

글로벌 금융위기는 1960년대~1970년대의 관료정치 시대나 자본주의 3 시대의 시장근본주의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정치가 진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부의 역할이 한편으로는 확장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축소되는 것이다.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으로 보일 수 있지만 거시경제의 관리와 금융규제에 대한 정부의 역할은 커지고 동시에 정부의 규모와 재정은 더 작아져야 함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4.0의 금융과 은행업

자본주의 4.0 시대에는 금융자유와 금융혁신을 제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경제의 안정성을 개선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금융시스템이 필요하다. 금융시스템에는 언제나 정부의 암묵적인 지급보증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금융기관 경영진들은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정부는 익명의 동업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자본주의 4.0의 세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이 경제분야 뿐 아니라 군사와 지정학적 영향력 측면에서 더 이상 글로벌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와 반대의 시나리오가 실혈 될 가능성이 더 높다. 1~2년 뒤에 미국과 세계자본주의는 새로운 환경에 맞춰 적응할 것이며, 정부는 성과가 나올 때까지 경기부양책을 계속하며, 실업률은 떨어지고 금융환경도 정상화 될 것이다.(저술 당시인 2010년의 이 예측은 2019년 현재 그대로 이루어졌다.)

미국식 ‘서구 자본주의 모델’과 중국식 ‘국가주도 자본주의’는 화합할 수 있을 것인가? 중국에 투자를 많이 한 기업들은 두 모델이 서로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식 모델과 서구식 모델이 융합할 수 있다는 바람은 아마도 환상일 것 이다.두 모델은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두 정치·경제 발전모델은 군사적, 외교적으로는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더라도 경제적으로는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이 또한 저자의 주장처럼 2018년부터 미중간의 갈등심화로 나타나고 있다.)

“자본주의 4.0 시대에 많은 부분들이 불확실하지만 분명한 것은 앞으로 몇 년 동안 글로벌 정치는 혼란스럽고 많은 갈등이 나타나게 되리라는 것, 국제무역의 불균형과 대립은 더 심화되고 상상할 수 없는 이유로 더 많은 금융거품이 형성되었다가 터지게 되리라는 것, 민주적 자본주의의 진전은 불규칙하게 진행되리라는 것뿐이다.” -아나톨 칼레츠키.

예민수 증권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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