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성 암 피해자들, 수년간 사측에 진상규명 및 공개사과 요구
2019년에도 연구직 직원 백혈병으로 사망
'무노조 경영' 방침에도 2014년 노조설립 됐지만 제 기능 못해…지난해 노사 첫 상견례

최근 국내·외에서 ESG(환경, 사회적가치, 지배구조) 경영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공공기관과 민간단체들이 각종 지표 개발에 나서고 있고, 이미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국내 주요 기업들의 비재무적 측면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겨 왔다. 사실 크게 보면 ‘기업평판’이라는 오래된 이슈의 최신 버전이라 봐도 무방하다. 윤리경영, 사회공헌, CSR, CSV, 이해관계자관리 등 어떤 명칭을 붙인다 하더라도 기업 입장에선 궁극적으로 기업의 평판이나 이미지 관리를 통한 포괄적인 양(+)의 효과를 기대한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거나 주가관리, 투자유치 등을 위해 소위 이미지 세탁이나 ‘그린워싱’ (Greenwashing)등 부정적인 행위를 감추려는 방패막이로 이용해 평가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본 매체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실제 기업별 발생이슈와 기업평판, 그리고 현실을 진단해 본다. <편집자주>

전영현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 (사진=삼성SDI 제공)
전영현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 (사진=삼성SDI 제공)

[증권경제신문=한행우 기자]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삼성SDI는 '제2의 반도체'라 불리는 2차전지 사업으로 또한번의 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소형 배터리 수준을 넘어 전기차, 친환경 발전 등 미래 성장동력으로 떠오른 배터리 사업의 호조세로 2019년 처음 매출 10조원을 돌파하고 올해 14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삼성SDI는 회사 규모에 걸맞게 각종 기업평가 지표에서 늘 우등생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보면, 근로자의 백혈병 산재인정에 오랜 시간이 걸려 관련 피해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고, 다양한 제품군에서 배터리 화재가 일어나 제품 안정성에 우려를 키우고 있다. 또 전통적인 '무노조 경영'여파로 직장내 갑질 논란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대처가 아쉽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백혈병 산재 인정 14년 '인고의 세월'

지난 2019년 1월, 삼성SDI 수원사업장에서 반도체용 화학물질을 개발하던 30대 연구원이 백혈병 투병 끝에 숨졌다. 시민단체 ‘반올림’에 따르면 그는 2014년부터 화학물질 개발업무를 담당했으며 2017년 말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에서 백혈병 사망자가 나온 건 처음이 아니다.

고(故) 박진혁씨는 삼성SDI(구 삼성전관) 울산공장에서 전자부품 세척하는 일을 하다가 2005년 11월, 28세의 나이에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박씨는 2004년 삼성SDI 사내협력사 KP&G에 입사해 10개월 만에 백혈병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2월, 삼성SDI 울산공장 직업성 암 피해자들은 회사에 암 발병에 대한 진상규명과 함께 산재인정과 공개사과를 촉구했다. 당시 참가자들은 삼성SDI 울산공장에서 암으로 투병 중이거나 사망한 노동자가 15명이 더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삼성SDI에서 직업성 암이 처음으로 산업재해 인정을 받은 건 이로부터 5년이 지난 2018년에 들어서다.

반올림은 2018년 11월 “삼성SDI 천안공장에서 일했던 37살 남성 신 모 씨가 2015년 진단받은 비호지킨림프종을 지난 12일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업무상 질병으로 판정했다”고 밝혔다. 비호지킨림프종은 신체 면역체계를 형성하는 림프계에 악성종양이 생기는 질환으로 혈액암의 일종이다.

백혈병 사망과 관련해 삼성의 ‘공식적인 사과’가 나온 것도 2018년에 이르러서였다.

당시 반올림이 파악한 삼성계열사 백혈병 등 직업병 제보와 사망자 통계를 보면 제보 320명에 사망자 118명에 달할 정도로 방대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입증하는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지난 2018년, 삼성 계열사 공장에서 근무한 뒤 백혈병·림프암 등에 걸린 근로자 및 유족은 산업재해를 입증하는 데 활용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에 작업환경보고서 공개를 요구했다.

고용부는 이에 대해 공개결정을 내렸지만 삼성은 ‘영업비밀’을 이유로 6건의 행정심판을 제기해 1, 2심 모두 승소해 결국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지난해 5월 ‘무노조 경영 원칙'이 폐기되면서 삼성SDI에도 비로소 노조가 닻을 올렸다. 삼성SDI 노사는 2020년 9월, 첫 상견례를 갖고 단체교섭에 들어갔다.

그러나 실제 삼성SDI에 첫 노조가 생긴 건 지난 2014년이었다.

당시 삼성SDI 울산사업부는 노동조합 설립을 알리며 ‘삼성의 75년 무노조 경영을 끝내는 대장정에 돌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SDI 울산지회는 ‘산업재해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권 확보’ 등을 주요 쟁점으로 내세웠지만 참여 인원이 적다는 이유 등으로 사측과 교섭한 바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가 노조다운 지위를 찾는 데만 무려 6년여가 걸린 셈이다.

2020년 7월에는 삼성SDI 청주사업장 내 반장급 간부가 일반 직원들에게 폭언, 괴롭힘 등 갑질을 자행하고 있다는 내부 고발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삼성SDI 반장의 폭언 그리고 늘어나는 피해자들과 감싸주는 상사’라는 제목이 글이 게시됐다.

스스로를 내부 직원이라 밝힌 글쓴이는 “우리 회사는 폭언, 폭행, 성추행 등을 하지 말라고 상시적으로 교육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삼성SDI 사업장 내 제조를 담당하는 A반장에게 폭언을 듣던 피해자가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퇴사를 고민할 정도였다”고 폭로했다.  

그럼에도 회사는 특별히 조사하지 않고 A씨는 여전히 똑같은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배터리 '제2의 반도체' 부상…안정성 도마 위
 
삼성그룹 전자계열사인 삼성SDI는 브라운관, PDP, AMOLED 등의 디스플레이 제품 생산을 주력 사업으로 했으나 2000년 리튬이온 2차전지 사업에 진출하며 사업을 다각화했다. 현재는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전지 부문에서 벌어들이고 있는 명실상부 전기차 배터리 기업이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과 더불어 국내 배터리 ‘빅3’로 불린다.

2020년 3분기 기준 삼성SDI 매출 3조872억원 가운데 전지사업부문 매출은 2조3818억원으로 약 73%를 차지하고 있다. 2019년 연매출 기준으로 봐도 전체 매출 10조원 중 7조7000억원이 배터리 부문에서 발생했다.

배터리가 회사를 이끌어갈 ‘미래 먹거리’라는 얘기다. 때문에 배터리 안전성 논란은 무엇보다 뼈아프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 위험으로 인한 리콜(결함시정)이 잇따르면서 삼성SDI도 적잖은 곤란을 겪고 있다. 독일 BMW와 미국 포드가 최근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차량의 배터리 화재 가능성에 따라 리콜을 결정했는데 두 회사 모두 삼성SDI의 고객사이기 때문이다.

BMW는 최근 330e를 비롯한 PHEV 차량 2만6900대에 대해 리콜 조치를 발표했다. 지난해 9월 말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PHEV 7개 모델 4500대에 대해 배터리 화재 위험을 우려해 리콜 결정을 내린 데 따른 후속조치다.

NHTSA는 화재 원인에 대해 “배터리 셀 결함에 의한 것으로 추정 된다”며 “추가 조사에서 배터리 셀 내부에 불순물들이 정상보다 많이 들어간 확인됐다”고 분석했다.

미국 포드도 유럽에서 판매하는 SUV(스포츠유틸리티차) 쿠가의 PHEV 모델의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한 문제로 2만500대 가량을 리콜키로 하고 해당 차량 생산을 중단했다. 여기에도 삼성SDI가 배터리를 공급한다.

국내에서 2019년8월부터 발생한 5건의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와 관련해서도 삼성SDI가 제조한 배터리가 포함돼 곤혹을 치렀다. 지난해 2월, 정부가 꾸린 ‘ESS 화재사고 2차 조사단’은 LG화학이 만든 충남 예산, 경북 군위의 ESS와 삼성SDI가 만든 강원 평창, 경남 김해 ESS 화재와 관련해 배터리 결함으로 결론냈다.

삼성SDI는 ESS 특수소화시스템 설치 비용 2000억원이 실적에 반영되면서 2019년 4분기 영업이익이 감소하기도 했다.

한편 삼성SDI는 최고경영자(CEO)인 전영현 사장을 제외한 주요 경영진 대부분을 최근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업계에서는 삼성SDI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화재 사고 등에 대한 문책성 인사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전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품질 확보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며 품질 문제를 강조한 바 있다.

기업평가는 '더할나위 없이 우수'

삼성SDI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평가한 2020년 ESG 통합등급에서 A(우수)를 받으며 선전했다. KCGS가 부여하고 있는 ESG 등급은 국내 기업의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수준을 평가하는 것이다.

등급 체계는 S(탁월), A+(매우 우수), A(우수), B+(양호), B(보통), C(취약), D(매우 취약)로 구분된다.

삼성SDI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 모두에서 A(우수)를 획득, 통합 A를 기록했다.

삼성SDI는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 지수(DJSI)’ 월드 기업에 국내 최다인 16회 선정되기도 했다.

DJSI는 글로벌 금융정보사인 미국 다우존스와 지속가능경영평가 전문기관인 스위스 로베코샘이 공동 개발한 지표다. 기업의 지속가능성 평가 및 투자 분야에서 공신력을 인정 받고 있다.

삼성SDI는 제품 환경 책임·공급망 사회적 책임·윤리경영·임직원 안전보건 등 경제·사회·환경 분야 전반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부터 매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행해 회사 주요 활동을 투명하게 공개한 노력도 인정받았다.

동반성장위원회가 2020년 9월 발표한 ‘2019년도 동반성장지수 기업별 등급’에서는 ‘우수’등급을 받았다. 동반성장위는 국내 매출 상위 200여개 기업에 대해 동반성장지수를 △최우수 △우수 △양호 △보통 4등급으로 평가하고 있다. 최우수 및 우수 기업은 정부 차원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신한금융투자는 또 올해 처음으로 국내외 기업들의 ESG 수준을 평가한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국내외 ESG 평가 기관의 자료를 바탕으로 각 기업의 ESG 수준을 컨센서스해 지표화했다. 삼성SDI는 ‘한국 ESG 컨센서스 톱50’에서 10위를 차지하며 좋은 성적을 냈다.  

지난 2016년에는 환경부 주관 ‘녹색기업 시상식’에서 삼성SDI 천안사업장이 대상을 받기도 했다.

삼성SDI 구미사업장, 울산사업장, 천안사업장은 환경부 지정 ‘녹색기업’(2019년 기준)이기도 하다. 

삼성SDI 주요 사건사고
시기 사건
2013.02 직업성 암 피해자들, 사측에 진상규명·공개 사과 촉구
2014.03 울산사업부, 노동조합 설립 
2014.08 여수공장서 하청업체 직원 머리 중상 입어 사망
2016.05 직업병 피해자·유족, 회사측에 교섭 요청
2017.03 EU 부과한 '브라운관 담합' 과징금 1848억원 확정 
2018.11 직업성암 첫 산재 인정
2019.01 연구직, 백혈병으로 사망
2019.10 "ESS 화재 방지…2000억 들여 안전설비 확충"
2020.04 울산공장에 한국노총 노조 설립
2020.08 법원 "리튬전지 발명 기여한 퇴사 연구원 1억원 줘라"
2020.09 노사, 첫 단체교섭
2020.10 BMW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 배터리 화재 가능성, 출고 중단

 

주요 평판지표
평가기관 내용 
환경부 천안사업장 녹색기업 대상
한국기업지배구조원 ESG 통합등급 A(우수)
미국 다우존스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 지수(DJSI)' 16회 선정
동반성장위원회 2019 동반성장지수 우수
신한금융투자 한국 ESG 컨센서스 1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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