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라면시장 진출해 '신라면' 전 세계 100여국에 수출한 식품외교관

신춘호 회장 (사진=농심 제공)
신춘호 회장 (사진=농심 제공)

[증권경제신문=이해선 기자] 농심 창업주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이 27일 별세했다. 향년 92세다.

1930년 12월 1일 울산에서 태어난 신춘호 회장은 1965년 창업해 신라면과 짜파게티, 새우깡 등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제품을 개발했다. 특히 신춘호 회장의 역작, 신라면은 전 세계 100여개국에 수출돼 한국 식품의 외교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1958년 대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성공한 故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을 도와 제과사업을 시작했으나 1963년부터 독자적인 사업을 모색했다.

신춘호 회장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던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1965년 창업당시 라면시장에 진출하며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신 회장의 말은 그의 주요어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춘호 회장의 브랜드 철학은 확고했다. 반드시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해야 하며, 제품의 이름은 특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명쾌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국적인 맛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라면쟁이, 스낵쟁이라 부르며 직원들에게도 장인정신을 주문하곤 했다.

그는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두었다. 당시 라면산업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일본의 기술을 도입하면 제품 개발이 수월했겠지만, 농심만의 특징을 담아낼 수도, 나아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안성공장 설립 때에도 신 회장의 고집은 여실히 드러난다. 신춘호 회장은 국물 맛에 혁신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선진국의 관련 제조설비를 검토하되, 한국적인 맛을 구현할 수 있도록 턴키방식의 일괄 도입을 반대했다. 선진 설비지만 서양인에게 적합하도록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농심이 축적해 온 노하우가 잘 구현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주문한 것이다. 

신춘호 회장은 브랜드 전문가로도 이름 높다.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이나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 농심의 역대 히트작품에는 신춘호 회장의 천재성이 반영되어 있다. 신춘호 회장의 대표작은 역시 ‘신라면’이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출시 당시에는 파격적인 이름이었다. 당시 브랜드는 대부분 회사명이 중심으로 되어있었고, 한자를 상품명으로 쓴 전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회장은 발음이 편하고 소비자가 쉽게 주목할 수 있으면서 제품 속성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네이밍이 중요하다며 임원들을 설득했고, 결국 지금 농심을 대표하는 스테디셀러를 탄생시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신춘호 회장은 1992년까지 농심 대표이사 사장직을 맡다가 농심이 그룹 체제로 전환하면서 그룹 회장직을 맡아왔고, 최근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근래에는 노환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지난 25일 열린 농심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신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이 상정되지 않았고, 신동원 부회장, 박준 부회장, 이영진 부사장이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25일 정기 주주총회 당시 신동원 부회장은 신 회장에 대해 “몸이 안 좋으시고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낙양 여사와 신현주(농심기획 부회장), 신동원(농심 부회장), 신동윤(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메가마트 부회장), 신윤경(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 부인)씨가 있다.

장례식장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고 발인은 오는 30일 오전 5시다. 장지는 경남 밀양 선영이다. ☎ 02-2072-2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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