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주의자 이석연 前 법제처장, ‘삶의 여정 속에서 배우는 원칙과 지혜’ 담은 책 출간

(도서출판 새빛컴즈 제공)
(도서출판 새빛컴즈 제공)

 

[증권경제신문=주길태 기자] ‘헌법적 자유주의자’로 불리는 이석연 전 법제처장(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가 자신이 20대에서 쓴 일기와 법조인으로서 걸어오면서 여러 기록들을 담은 책 ‘누구나 인생을 알지만 누구도 인생을 모른다’를 출간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이,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데미안>에 나오는 이 문구처럼 인간이 껍질을 깨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과정은 보통의 고통을 초월한다. 그런 점에서 저자 이석연 변호사가 걸어온 삶은 혼란한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여러 울림과 메시지를 준다. 

저자는 중학교를 졸업한 지 6개월 만에 고졸 검정고시 14과목 전체를 합격한다. 바로 대학에 진학해도 되었을 텐데 어떤 이유에선지 그는 금산사 심원암으로 들어가 500여 권의 책을 읽게 된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그의 결심 때문이라고 해도 책과 함께한 그 2년이라는 시간이 짧지 않다. 아마도 그는 그 어린 나이에도 알량한 세상의 껍질 속에 머무르기보다 무엇이 진리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지를 갈구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뉜다. 제1부는 저자의 20대 당시 일기를 정리한 것이다. 20대 이석연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다짐이자 맹세의 기록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에게 보내는 위로와 동행의 편지다.

1970년대 20대 법대생의 삶은 어떠했을까? 고시 합격이라는 현실적인 고민에서부터, 서슬 퍼런 유신 시대를 지나오며, 책 속의 현실과 판이한 책 밖의 현실에 괴로워하고 법 앞의 평등이라는 이념을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도 마음 한 칸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흡사 드라마처럼 50년 전의 그와 오늘의 우리가 비슷한 고민으로 연결됨이 느껴진다. 불공정과 억압에 분개하고, 치열하게 현실에 부딪히고, 미래를 고민하고, 또다시 다짐하는 것은 오늘의 우리와 다르지 않아 기시감이 든다. 당시의 일기를 통해 청년 이석연이 보여준 고민, 그리고 검정고시 출신으로 행정고시와 사법고시 합격까지의 도전과 집념 그리고 현실극복의 과정을 가감 없이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과거 이야기와 성공스토리, 교훈적 메시지에는 별 관심이 없어한다. 하지만 이 책은 담백한 교훈과 울림을 던져준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저자의 20대 일기가 독자들의 지쳐가는 현실에 용기를 주는 저자의 20대 당시의 언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2부는 이후 저자가 걸어온 삶의 기록들이다. 일본에 대한 바른 인식을 제안하는 글에서부터, 역사논쟁에 형사 처벌을 내린 판결에 대한 위헌소송, 자사고 헌법소원 사건, 대우그룹 해체사건 前 임원 추징금 재심청구 내용까지 저자가 외면하지 않은 시대적 이슈에 대한 내용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석연 회고록’과 같은 이 책에서, 그와 함께 걸어온 사람들과의 보석 같은 인연 역시 빠트리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시대정신에 입각하여 던지고 있는 현실 정치에 대한 고언(苦言)들은 그가 여전히 ‘미스터 쓴소리’, ‘논쟁적인 법률가’로 남아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정치, 경제, 교육 등 사회 전반에 대한 현실참여 활동, 시민운동가로서 그리고 법제처장으로서 권력에 흔들림 없던 그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저자 이석연 변호사는 이 책을 출간하는 가장 큰 목적으로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 방황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쳐가는 2,30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삶에 대한 열정을 느끼길 바란다”고 출간소회를 밝혔다. 

저자인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행정고시(제23회)와 사법시험(제27회)에 합격한 후 법제처와 헌법재판소에서 20여년간 공직에 몸담았다.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장을 지냈으며, 2008년 3월부터 2010년 8월까지 법제처장(제28대)을 역임했다. 변호사로서 주로 공익소송을 맡으면서 시민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제1호 헌법연구관을 지낸 그는 30년 넘게 헌법연구와 헌법소송에 전념하면서 30여건의 위헌결정을 이끌어내 한국사회를 바꾸었다. 대표적 1세대 시민운동가로서 경실련 사무총장(제4대) 시절 시민단체의 권력화, 초법화(超法化), 관료화 등을 경계한 바 있다.

현재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 ‘헌법포럼’ 대표, ‘책 권하는 사회운동본부’ 대표로 활동 중이다. 자타가 인정하는 독서광(chain-reader)인 그는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많은 저서를 냈다. 저서로는 《책, 인생을 사로잡다》, 《사마천 사기 산책》, 《페어플레이는 아직 늦지 않았다》, 《여행, 인생을 유혹하다》, 《호모 비아토르의 독서노트》, 《함께 길을 가다 (공저)》, 《헌법 등대지기》, 《침묵하는 보수로는 나라 못 지킨다》, 《헌법과 반헌법》, 《헌법은 상식이다》, 《헌법소송의 이론과 실제》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오랫동안의 끈질긴 방황 끝에 나의 心靈(심령)은 冷靜(냉정)의 상태로 정착했다. 내일부터 고독과 소외감을 인격도야와 내적인 충실을 기하는 주춧돌로 삼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자 한다. 내가 처해 있는 환경과 상황을 냉철히 분석, 평가해서 비판함으로써 이에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유비무환의 태세를 갖추고자 한다. 앞으로 계속해서 내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피맺힌 行言을 여기에 고백, 공개하고자 한다. 
<1974년 5월 31일> 일기 중에서

Nietzsche도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 내부의 개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격리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그 또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선악의 피안(彼岸)」을 외치며 孤寂(고적) 속에서 살다가 노이로제에 걸려 죽지 않았는가! 고독 속에서 정진할 때 거기에는 반드시 向上이 있게 마련이다. 향상하는 길에 노력하는 순간은 행복한 것이다. 행복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다. - 고통스러운 것을 참고 이기는 것 – 그 자체가 하나의 행복이다 
<1974년 10월 7일> 일기 중에서

국제 정치 조류 속에서 본 우리 국내의 현실, 언론과 인권 탄압이 다반사처럼 자행되고 있으며, 치부를 하는 특권층, 기업윤리를 상실한 재벌들의 횡포,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貧益貧. 富益富의 사회현상, 특권층의 약자층에 대한 우쭐대는 특권 의식, 가난한 자와 약자들의 가슴에 맺히는 말 없는 열등의식과 반발 의식, 매사에 있어서의 官의 개입, 권력에 아부 아첨하는 기성세대의 치졸한 모습, 부정부패, 불신이 만연되고 있는 사회 조류……… 과연 이러한 더러운 사회 현실을 내가 헤치고 나갈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이론적으로 정의를 부르짖고 해봤자 책 속의 현실과 책 밖의 현실이 판이한 상황에서 내가 법서를 독파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올가미를 씌운 유신헌정하에서 法앞의 평등,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法의 이념이 실현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회의… 
<1974년 10월 11일> 일기 중에서

나는 지금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를 씹고 있다. 그것은 人性의 저변에서 파도와도 같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원초적인 절규다. 결코 좌절은 하지 말자! 가난과 고독이 엉킨 삶의 테두리를 맴돌아야 하는 현 상황이지만 미래를 위한 더 높은 차원으로 나 자신의 위치를 승화시키기 위해서, 보다 더 자기희생적인 삶을 감수하기 위해서, 그리고 보잘것없는 나 자신의 자기완성을 위해서 나는 겸허한 자세로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집념의 세계에 몰입하련다. 
<1975년 2월 10일> 일기 중에서

나의 앞에는 남보다 더 높은 험산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에 이 눈앞에 작은 봉우리로 보이는 司試와 行試 정도야 곧바로 정복할 수 있으며 또 단기간에 정복해야만 한다. 그러고 나서 내 생애를 점철시킬 다른 더 험준한 봉우리를 향하여 느긋하게 마음먹고 조금도 지체해서는 아니 된다. 
<1977년 10월 6일> 일기 중에서

예외가 원칙으로 통하는 예외적 상황이 憲法現實에서뿐만 아 니라 나의 생활에도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항상 “예외”를 중시해야 한다, 모든 중대 문제의 발단은 예외에서 파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978년 12월 18일> 일기 중에서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지혜 있는 자는 반드시 이익과 손실을 아울러 참작한다. 이익을 계산해 두면 하는 일에 확신을 가질 수 있고 손실을 계산해 두면 환난을 방지 할 수 있다.”고 했거니와 내가 지금의 생활을 부정적이고 소극적, 비관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면에서 볼 때 귀중한 체험을 얻고 있다고 좀 더 진취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그렇게 해야만이 현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 
<1981년 12월 8일> 일기 중에서

과거 우리를 통하여 문물을 받아들이고 국가 형성과 발전을 이룩하였던 일본인들이 근대에 눈이 먼저 뜨이자 그들은 그들의 발전시험장으로 한반도를 택했다는 불쾌한 현실 앞에 우리는 분개한다. 그러나 화려했던 과거를 매양 운위한다는 것은 그만큼 부족한 현실을 합리화하는 것밖에 안된다. 이제 우리는 그들을 이길 수 있다는 힘(정신력)을 지녀야 한다. 
<두 번 잃었다가 되찾은 지갑과 일본 단상(斷想)> 중에서

그가 개척했던 길은 이제 아름다운 동행이 넘치는 길로 헌법재판史(사)에 우뚝 섰다. 법조인으로서 초입에 그를 만나 엄격한 단련을 거쳤던 것은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반면 그 후 나로 하여금 때로 남들이 가지 않는 고난과 투쟁의 길로 가도록 책무감을 고취시켜 준 가시밭길이기도 했다. 관용과 진실에 기초한 공동체 정신을 헌법적 가치로 회복해야 할 이 시기에 우리는 헌법의 거목을 잃었다. 부디 평안히 영면하시기를… 
<재판은 상식과 순리에 입각한 단순 명료한 것이어야 한다> 중에서

우리 사회에는 존경할만한, 젊은이들의 귀감이 될 만한 원로가 거의 없다. 원로가 없다는 것은 그만둘 때가 되었는데도 물러나지 않고 권력욕, 명예욕, 물욕에 집착하는 노욕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어느 분야에서 이룩한 업적을 발판으로 권력과 명예를 찾아 기웃거리다가 그동안 쌓아온 명성마저 와르르 무너뜨리게 된 데 있다. 노욕에 사로잡혀 추한 모습을 보이고 비참하게 퇴장한 원로들을 그간 수없이 보아왔다. 
<범우 윤형두 출판역정 54년, 그 이문회우(以文會友)의 삶> 중에서

사마천의 「사기」 이장군 열전 편에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라는 명구가 나온다.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지만 그 아래에는 저절로 길이 생긴다는 뜻이다. 덕과 경륜을 쌓으면서 한 길을 가는 원로의 곁에는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들이 모여들게 마련이다. 나라에 도리(桃李)의 역할을 할 원로들이 그립다. 원로가 없는 사회는 삶의 풍경이 경박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사회의 지도자들은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나라에 원로(元老)가 없다> 중에서

지금도 이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즉 변화와 개혁을 위한 시민단체의 활동은 헌법의 기본정신 내지 기본이념에 입각하여 시민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실용주의적 인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시민운동에 관한 경험론적 성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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