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언제나 옳은가? 모든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가?
마이클 샌델이 시장지상주의에 던지는 질문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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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와이즈베리, 2012

(원제: WHAT MONEY CAN'T BUY)


누군가에게는 콧방귀 뀔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돈을 쓰는 게 미덕이고, 사회를 풍요롭게 하며, 그 덕에 엄청난 속도의 산업발전을 이루어 소위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발전했으니.

미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교도소에서 추가로 비용을 내면 깨끗하고 아늑한(?) 개인 감방으로 업그레이드 해주고, ‘나홀로 운전자’여도 돈을 지불하면 한적한 카풀 차로를 이용할 수 있으니.. 도덕의 경계와 빈틈을 돈으로 메꾸고도 비판은 커녕 동경의 대상이 되는 세상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 필요 없는 것’ 처럼 느껴진다.

자본주의나 공리주의를 맹신하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불편하다. 모든 재화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고, 수요와 공급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는 거래가 발생한다면 이 행위들이 결국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마이클 샌델의 이 말은 무언가 목에 탁 걸리는 느낌일 거다.

돈으로 시작된 거래는 그 가치를 변질시킨다

학업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에게 책을 읽을 때마다 돈을 지급하는 학교의 정책은 학생들의 독서량을 늘려줄 수는 있겠지만 독서의 가치는 떨어뜨린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많은 이들이 의료혜택 특히 전담진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의사의 휴대전화 번호가 연간 1,500달러~25,000달러에 거래되면서 그 가치는 변질되기 시작한다.

시장논리에 의해 불평등과 부패를 초래하는 분야일수록 시장의 가치평가와 재화의 가치는 변질된다. 돈이 필요한 사람과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 간의 거래는 시장논리 측면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그 경우가, 자신의 생명보험을 팔아 현금을 확보하는 이와 그 보험증권을 산 후 피보험자가 죽는 날을 기다리는 투자자로 나뉜다면... 아직도 이 거래가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을까?

삶의 가치 ≠ 경제적 효용

아무리 자본주의가 정착되고, 상업주의, 소비지상주의가 세상을 지배한다 한들 인생의 목적이나 삶이 추구하는 가치들을 ‘경제적 효용’으로 판단하고 환산할 수는 없다. ‘보이지 않는 손’이 수요공급 곡선을 그리며 도덕과 양심, 질서의 가치를 결정하도록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책은 초지일관 시장이 어떻게 도덕을 밀어내는지를 수십 가지의 예를 통해 설명한다. 가끔 도덕적 가치가 우선했다는 전설적인(?) 사례들도 있긴 하지만, 결국엔 정부의 정책과 기업들의 상업주의가 어떻게 가치에 숫자를 부여하고 거래를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지금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부정하는 책은 절대 아니다. 다만 마이클 샌델의 말처럼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에서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싶은가?”에 대한 물음 정도만 독자가 스스로 되새기고 고민한다면, 마이클 샌델도 이 책을 쓴 보람을 느끼지 않을까.

사족(蛇足)

대한민국은 그동안 재벌가의 횡령‧배임이나 각종 범법행위들에 대해서 그들이 국가경제에 기여했다는 명목으로 혹은 기여할 것이라는 명목으로 면죄부를 줬다. 앞에서 언급했던 ‘감방 업그레이드’ 정책이나, 일정액만 미리 지불하면 도로에서 시속 150km로 달리든 200km로 달리든 과속 딱지를 떼지 않는 정책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면죄부를 팔아 마련한 돈이 수출입 지표나 인프라 건설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줬을지는 모르겠지만, 세상 모든 판단의 기준을 효율성과 경제적 득실로만 따질 수는 없다. 도덕과 정의가 배제된 경제학이 앞으로 실재(實在)할 수 있을까.

김영롱 MTN 앵커(네이버TV 「롱앵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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