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디라도 화교가 있다

‘바닷물 닿는 곳에, 연기 나는 곳에 화교가 있다.’

북극, 남극을 막론하고 세계의 끝이라도 “야자나무 한 그루가 있다면 화교가 2명 있다.”고 말할 정도로 곳곳에서 용감하게 경제적 성공을 일궈내고 있다. 너무 인색하다는 말을 들으면 비로소 부자 반열에 올랐다고 기뻐한다. 민들레 홀씨처럼 어디든지 날아가 언제나 끈기 있게 어떠한 경우에도 성공 신화를 만들어 낸다.

가진 것 없고, 도와줄 사람 없기에 “잠깐 쉬는 것은 죽어서 하라.”는 신조로 몸이 가루가 되도록 생활 터전을 일군다. 뒷골목에서 담배 개비 판매나 땅콩 장사, 엿장수 등과 같이 허접한 리어카 잡화장사로 출발하여 구멍가게를 열고 음식점으로 차근차근 키워나간다.

이윤은 박하고 몸은 힘들어도 가장 손쉽고 틀림없기 때문이다. 바로 어제까지 메밀국수 치더니 어느새 큰 빌딩을 소유하게 되었는지 탄복 할 때 까지 기본을 잃지 않는다. 99%를 달성했다면 반쯤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정공법으로 사업을 확장 시켜나간다. 계획대로 기반이 다져지면 집안사람이나 고향 친지들에게 맡기고 홀가분하게 새로운 개척지로 떠난다.

철저한 현실주의로 중무장

현금제일주의와 현실주의라는 상술의 기본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된다. “내일의 백(꿈)보다 오늘의 오십(현실)을 택한다.”는 신념으로 현금을 손에 쥐어야만 자기 돈이라 여긴다. 남에게 제압당하기 전에 먼저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는 비관도 낙관도 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가정(假定)은 좋아하지 않으며, 일어난 현실을 그 시점에서 유연성을 가지고 풀어 나간다. 현실이 자신들에게 악의를 갖고 있지 않다면 악의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라는 조금은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만약에 퇴각하더라도 ‘난파선의 쥐’ 같이 재빨리 도망치는 곡예술로 나중에 재출발의 여지를 확보해 둔다. “매매에 있어서는 한 푼이라도 다투고 숫자에 귀찮게 군다.”가 진정한 상도라 여긴다. 무엇보다 ‘체면’을 중시하고 한번 연고를 맺은 파이프라인은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처음에 머리 숙일 때의 열의와 성실함을 엄격하게 지켜나간다.

특히 동업자를 중히 여기는 이유는 자신의 3대 앞을 내다보는 처세관 때문이며 진정한 장사꾼은 이름보다는 이윤을 취하는 것이란 생각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만약에 비즈니스 과정이나 인간관계에서 심대한 분쟁과 다툼이 일어났을 경우에도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승부욕을 버리고 ‘몰법자(沒法子:하는 수 없군)’정신을 발휘함으로서 독특한 체념을 선택한다. 가령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하는 수 없다는 ‘허무 정신’으로 “그 이야기는 이제 끝났다.”라는 말로 단념하고 결코 미련을 두지 않고 상대방을 비방하지 않는다.

싱가포르 차이나 타운
싱가포르 차이나 타운

자식에게도 공짜는 없다

그들은 ‘자식은 아버지의 이력서’라는 신념에서 “자식은 3살 때부터 혹사시켜라.”는 교육관을 견지하여 가게 일을 돕게 하고 심지어 아르바이트 한 돈도 받아낸다. 그리고 ‘독립’시킬 때도 결코 공짜로 떡하니 차려주는 법이 없다. 자칫 하면 세상을 얕볼까 염려해서다.

“오늘의 일은 오늘 중에 끝낸다.”는 일념으로 더 많은 시간 일하며 충고해주는 사람을 기꺼이 스승으로 받든다. 성공을 방해하는 것은 게으름 피우는 것과 떠드는 것이라 하여 ‘늦잠과 과음’을 배격한다.

그러나 사람을 믿기까지 10년의 시간을 두고, 자신의 재산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함으로서 지갑의 끈을 단단히 조인다. 그들은 각종 모임에 얼굴 내밀고 친교를 다져 나간다. “맛이 있는 것, 좋은 것은 혼자 간직하지 말고 친구에게 가르쳐 주어라.”는 격언에 충실하며 언제나 ‘돈 벌이’가 되는 정보에 목말라 한다. 결혼식, 생일잔치, 장례식을 인생의 3대 사업이라 소중히 여겨 거창하게 치르며 한편 ‘장사’를 끌어 들이기도 한다.

“우리들이 가는 곳이 ‘중화(中華)’의 나라이다.”라는 단단한 신념 때문에 전 세계의 화교 인구는 크게 잡아 168개국에 8,700여만 명으로 추산되며 90%이상이 동남아시아에 거주하며 경제의 70%를 장악하고 있다. 현금 유동성 자산만 2조에서 3조 3,500억 달러에 달해 ‘제 3의 세력’이라 불리고 있다.

최대한 검소하게 그러나 용감하게

우리나라에는 1882년(고종 19년) 임오군란 때를 시작으로 ‘또 하나의 중국’으로 불리는 지금의 인천 차이나 타운이 120년 역사를 간직한 명소가 되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이 곳은 남의 나라이다.”라는 생각이 담겨 있지만 거주국과의 동화(同化)에도 공을 들이며 한편으로는 최후의 선을 긋고 자신들의 전통을 당당하게 지켜나가고 있다.

“족(足)함을 알면 그것이 선경(仙境)이다.”라는 가르침을 받들어 금전만능을 부르짖으면서도 금전의 허무함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을까. 사업을 자기 확대의 수단으로만 삼지 않고 이를 초월하여 사회에 공헌하고 후세에 길이 남을 일들을 착착 해오고 있다.

생활은 최대한 검소하게 하고 절약하며, 쓸데없는 노력과 낭비를 줄이는 것이 그들의 성공신화에 녹아있다. 지금도 화교 거리에 인간의 생활이 농축된 것과 같은 열기와 늠름함이 넘쳐나는 이유이다.

곽형두 머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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