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 번역하기'란 책을 최근 출간한 김재준 국민대 교수
'벤야민 번역하기'란 책을 최근 출간한 김재준 국민대 교수

[증권경제신문=김형기 기자] 경제학 박사이면서 화가로서 그간 미술 강의와 저술 활동을 해 온 김재준 국민대 교수가 2020년 새해 들어 매우 독특한 책 1권을 출간했다. ‘벤야민 번역하기’ 란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소설 형식의 인문학 책이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어 보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이 책이 도대체 뭐지?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거지?’ 하는 의문에 봉착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열어 표지의 반복에 해당하는 1페이지를 넘기고 2페이지에 있는 문장을 읽어 나가노라면, 1페이지를 다 읽기도 전에 ‘이 책은 뭔가 다른 책들과는 매우 다르구나’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무시하는 것은 물론, 대부분의 독자에게 매우 생소한 외국어들이 한국어와 수없이 뒤섞여 서술돼 있다. 한국어로 표현돼 있는 문장들도 논리의 일관성을 벗어나 수없이 많은 논리의 일탈과 변형으로 기술돼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단 2사람도 거의 비슷한 독후감을 낼 수 없을 것이란 느낌이 든다. 결국 이 책을 읽어나가는 방식과 내용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 책에 대해 저자가 어떤 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지, 직접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저자인 김재준 교수를 만나 일문일답을 통해 이 책에 대한 작가의 변을 들어 보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1. 영어 불어 일어 독일어, 심지어 라틴어 등 매우 다양한 외국어를 한글과 같이 사용해 기술했는데, 작가 입장에서 굳이 이런 외국어 들을 병행해서 책을 쓸 이유가 있었는가. 악의적으로 보면 불필요하게 독자들에게 잘난 척하는 게 아닌가. 

- 저자인 나는 이 책에 대해 서두에서부터 ‘불완전한 책’이라고 표현했는데, 10여 년 전 어느 날 아침 영어를 완벽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영어를 완벽하게 못할 것이라는 걸 어느 날 아침 절망적으로 느꼈는데, 차라리 그냥 해보고 싶은 언어를 다 배워보자. 남들이 배우지 않는 것을 배우자. 한국 사회는 너무 실용성 중심으로 돼 있다. 요새는 중국어나 스페인어가 다소 실용적이다. 그래서 철저하게 실용적인 걸 배격하고 그냥 내가 배우고 싶은 말을 배워보자. 이렇게 생각했다. 이태리어를 배워 보면 너무나 즐거운 언어다. 당시 개인적으로 좀 우울했는데, 이태리어를 배우고 우울증이 치유가 될 정도로 굉장히 좋은 언어였다. 그 후 불어로 갔다가, 독일어로 갔다가 철학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아예 서양 문물의 뿌리부터 뽑아보자. 그래서 라틴어로 가보자. 라틴어를 배워보니까 너무 어렵다. 4년 정도 배웠다. 라틴어 배우고 나니까 다른 언어가 쉬워 보였다. 페이스북 CEO 저커버그가 고등학교 때 제일 열심히 공부한 것이 라틴어. 구글에서 라틴어 능통자를 우대 채용한다. 라틴어를 알면 번역 프로그램을 짜는 데 도움이 된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실용성이 없다고 버렸던 것이 되살아날 수 있다. 라틴어는 비현실적으로 어려운 언어인데 배우고 나면 머리가 똑똑해진다. 그런 이야기들을 이 책에 다 써놨다. 라틴어 문법 설명도 들어있고. 서양의 고전을 번역본으로 읽다 보면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번역이 잘 돼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내가 접근한 방법은 거꾸로. 일단 번역 책을 읽고 그게 이해가 가면 끝내는데 이해가 안 가면 영어책으로 읽어본다. 그래도 이해가 안 간다면 다시 거슬러 올라가서 독일어, 라틴어 등 원조 언어로 읽어본다. 능통하게 읽을 수 있는 실력은 아니다. 여러 언어 배웠다는 게 중급 수준까지 8개 정도 배워본 것. 한 페이지를 가지고 두 시간에 걸쳐 읽을 수 있는 거북이 같은 속도. 특별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파면 이해가 간다. 
많이 배우다 보니까 소화불량 상태에 빠진다. 완벽하게 이해하면 머리가 가벼운데 그게 안되니까 불완전한 언어들이 공존하고 있으니까 그 상태에서 책을 쓰다 보니까 한국말을 쓰면 그때 갑자기 거기 해당되는 엉뚱한 언어가 떠오른다. 본능적으로 쓴 것. 한국말 쓰다가 그 말이 떠오르면 같이 쓰고, 다른 언어가 떠오르면 다시 쓰고 그러면서 병렬이 되어버린 것. 처음에는 ‘억제를 하고 통일감 있게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쓰다 보니까 굉장히 독특하다. 또 한국 K팝이나 힙합으로 연결된다고 생각되는 점은, 요즘 한국말 영어를 뒤섞어서 노래 가사로 쓰는데, 그게 해외 진출을 위해서도 유리하지만 그게 편안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그게 전달이 더 잘 될 수도. BTS의 ‘So What’이라는 노래 중 한국어 영어가 막 섞이고 문법파괴가 일어난다. 그런 것이 재미 있다. 이 책도 그런 식으로 쓴 것. 한국은 순수문화보다 대중문화가 더 일류라고 생각. 그들이 더 세상의 기운을 먼저 감지했을 수도. 한국 순수문학이 한국말의 아름다움을 얘기하고 있지만, 파괴해볼 수도 있다고 생각. 일본도 보면 외국어를 뒤섞어 쓴다. 나쁜 게 아니다. 
 
2. 제임스 조이스란 유명 문학가의 서술 방식을 흉내 낸 면도 있다고 설명했는데, 그 작가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했다는 의미인가?

- 그런 면도 있지만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언어유희, 말장난이다. 말장난을 대규모로 해보자. 제임스 조이스가 쓴 ‘피네간의 경야’란 책에는 30개국 언어가 등장한다. 이 책을 보면 말도 안 되는, 그러나 말이 되는 말장난을 해놨다. 이 책의 서술 방식에 영감을 준 게 BTS와 제임스 조이스다. 한국 대중문화와 가장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만났다. 유럽 언어들 끼리는 잘 믹스가 되는데 한국어랑은 잘 안된다. 그냥 믹스를 해본 것. 다만 한국어는 유럽어 들과 말장난하기가 힘들다. 주로 한자어랑 장난을 친다. 실용성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이런 식으로 해보자’라는 생각이었다. 예술이라는 건 기본정신이 저항이다.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 기존 작품에 저항해서 새로운 걸 만들다 보면 기존 권위에 저항하게 된다. 이런 좌파적 성향의 예술가들을 내버려둬야 새로운 예술이 나오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술이 나온다. 정부는 예술가들의 반체제적 성향을 내버려 둬야 한다. 그걸 잘 관리해야 한다. 무슨 얘기를 하고 무슨 생각을 해도 풀어줘야 한다. 이런 자유로운 발상, 실험, 저항이 활발한 나라, 사회가 되어야 경제적 활력이 있다.

3.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무엇인가? 

- 정확히는 잘 모르겠는데 불완전하기 때문에. 이 책의 목적은 새로운 실험을 하고 싶었다. 중요한 메시지는 저항. 저항의 문제가 무엇인가. 정치적인 의미인데. 권력이라는 걸 생각을 해보면 경제, 검찰, 언론, 예술 다 권력이 있다. 그런 것에 다 저항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특히 예술 권력에 대한 저항을 얘기해 보고 싶었다. 한국 예술에는 진정한 실험이 없다. 원로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 예술가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다. 젊은이들도 조로(早老)하여 모두가 노인들이다. 서구 예술가들을 추종하면서 그들이 허락한 실험만 하는 것은 진정한 실험이 아니다. 문학은 문학의 틀을 깨고 미술은 미술의 틀을 깨고. 이런 것을 많이 보고 싶다. 

4. 굳이 주제가 있다고 한다면 실용성에 대한 거부와 저항을 통해 모든 새로운 것의 탄생을 바라는 것인가? 

- 그렇다. 한국 예술에 대해서는 우려의 말을 했지만 한국 사회에 대해 나는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한국이 정치적 민주주의에 있어서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정치는 죽어 있지만 한국 정치는 살아있다. 한국만큼 역동적인 사회는 없다. 한국 사람들은 통치하기 힘들다. 저항 정신이 풍부하고. 그 에너지를 새로운 예술, 기술 등과 연결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역동적으로 끊임없이 변하면서, 사람들이 다 저항하고 있다. 저항을 가장 적게 하는 분야가 예술 권력 쪽이다. 예술 권력에 저항해보는 것이 궁극의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아직 유명한 예술가들이 이야기하면 다 귀를 기울인다. 그런 것에 저항해본다. 이미 이런 방향으로 한국 사회는 움직이고 있다. 

5. 그럼 가장 중심 되게 생각하는 건 예술 권력에 대한 저항인가?

-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 같은 게 있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일부 독자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얘기일 수 있다. 한국의 정치 상황을 보면 위선적인 요소가 많다. 그런 것이 역겹다. 한국의 보수 정치에 대한 반발, 예술 권력에 대한 저항 등 내용이 있는데. 그 메시지가 새로운 경제, 새로운 콘텐츠 혁명, 일종의 제4차 산업혁명이랑 연결이 된다. 아주 옛날에 예술의 소비자는 왕이나 귀족이었다. 예술가는 일종의 하인 같은 존재였다. 그러다가 근대화가 되면서 예술가가 자유를 얻고 예술가가 주인이 돼 버렸다. 권력이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넘어갔다. 현대미술로 가보면 일반 관객들이 느끼는 불만이 있다. 이해를 강요당하는 느낌조차 난다. 그러나 동시에 소수의 아니 많은 수의 관객은 이미 현대미술의 논리를 꿰뚫어 본다. ‘더 새로운 것은 없니’ 하고 조롱을 한다. 나도 그 정도는 만들 수 있어. 예술 권력이 이동하고 있다. 이런 대담한 저항을 예술가의 독점 권력에게 해보자. 관객 모독이 아니라 예술가 모독의 시대가 되었다. 이제 모든 분야가 완전경쟁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언론도 똑같다. 권력의 독점 현상이 끝났고 일반 대중이 ‘그건 아니야’라고 외치는 시대. 예술에서도 이미 저항이 시작됐다. 대중음악의 일부는 이런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숭배하는 존재로서의 아티스트가 아니라, BTS와 아미의 사례에서 보듯이 상호의존적인 예술가와 대중의 수평적 관계. 순수예술은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 가장 낙후된 분야일지도 모른다. 나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 새로운 형식, 형식을 넘어서 새로운 방향성을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다. 너무 거창하게 들릴까 봐 소설이라고 해 두었다. 사실은 새로운 시대를 선언하고 있다.  비예술가(non-artist) 선언문. 

6. 이 책의 독자 층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얻어 가고자 바라는 게 있다면? 

- 정말 실용적인 것은 실용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얘기를 하고 싶은 것. 라틴어를 배운다는 것은 비실용적인 것인데 시대가 바뀌면 그것이 바뀌기도 한다. 한국이 너무 실용성에 몰입돼 버린 사회인데, 그래서 놓치는 것이 너무 많다. 이 책을 처음 쓸 때는 독자 층이 일종의 지식인 또는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이 읽어 보더니, 지식인 독자들은 거부반응을 내더라. 이렇게 쓰면 아무도 안 읽는다는 반응이었다. 의외로 지식인이라고 하기 어려운 부류의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재밌다’고 하더라. 워낙 이 책은 예술가가 지식인한테 읽어보라고 도전하는 책인데, 그 사람들은 읽고 오히려 거부감을 일으키고 싫어한다.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건너뛰고 읽으면 되고, 그림책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된다. 그렇게 하니까 즐겁게 읽었다고 하더라. 증권경제신문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주식으로 돈 벌고 싶으면 주식만 하면, 차트만 보고 있으면 안 된다. 다양하게 딴짓도 하면서 주식해야 돈 벌 수 있다. 이런 책을 보면서 좀 자유로운 발상을 해보면 주식으로 대박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메타(초월했다)인지’라는 단어가 있는데, 메타인지가 발달한 사람은 객관적인 자기평가를 잘한다. 나의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지켜보는 힘을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일종의 메타인지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7.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얻는 소득이 있다면?

- 이 책은 실용성을 초월한 것을 추구하지만 실용적인 것도 많다. 외국어 문법, 유럽 언어를 이해하는 법과 해설도 담겨 있다. 실용성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실용성과 더불어 비실용성을 동시에 추구해보자는 게 이 책의 생각이다. 경제학자 케인즈는 이런 인생을 살았고 주식투자 수익률도 대단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경제성장 초기에는 경제가 발전하고 예술이 뒤따라 간다면, 이제 선진국이 된 한국은 새로운 예술이 없어서 더 이상의 경제성장이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가장 비실용적으로 보이는 문화예술이 가장 실용적인 영역인 경제의 근본적인 기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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