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입찰 들러리 선 담합 건설사, 설계보상비 반환해야"

[증권경제신문=길연경 기자] 부산지하철 1호선 연장공사 입찰 당시 담합해 형식적으로 입찰하고 고의로 탈락한 건설사들이 받은 설계보상비를 반환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부산교통공사가 6개 건설사를 상대로 제기한 설계보상비 반환소송 상고심에서 원고가 패소했던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이번 판결의 피고 측은 대우건설, 한창E&C, 금호건설(전 금호산업), 혜도종합토건, SK에코플랜트(전 SK건설), 삼미건설 등이다.

앞서 부산교통공사는 2008년 12월 조달청을 통해 부산지하철 1호선 연장구간(다대선) 1·2·4공구에 대한 턴키 방식 건설공사 입찰공고를 냈다.

입찰공고문에는 설계심의를 진행하고 상위 점수 6개사 중 입찰에서 탈락한 업체에게 설계보상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다만 입찰 무효사유가 발생할 시 보상비가 지급된 이후라도 즉시 반환해야 한다는 단서도 달았다.

입찰에는 건설사 9개 업체가 참여했고 현대건설, HJ중공업(전 한진중공업), 코오롱글로벌 등 3개 업체가 낙찰됐다.

4년이 지난 뒤 탈락업체들이 미리 합의해 투찰가격에 따라 형식적으로 입찰에 참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피고 건설사들은 각 공구별로 각각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가하기로 했다. 피고 건설사들이 속한 컨소는 다른 건설사가 속한 컨소가 낙찰받을 수 있도록 미리 합의한 입찰가격에 따라 형식적으로만 참가해 낙찰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현대건설 컨소는 1공구 1079억2000만원, HJ중공업 컨소는 2공구 891억5400만원, 코오롱글로벌 컨소는 4공구 976억1400만원의 계약금액인 공사도급계약을 각각 체결했다.

반면 탈락한 건설사들은 2009년 6월 설계비의 일부를 보상한다는 입찰공고에 따라 대우건설은 1공구 5억5146만원, 금호건설은 2공구 4억7236만여원, SK에코플랜트는 4공구 5억1934만원씩을 각각 돌려받았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2014년 4월 입찰 과정에 담합이 있었다는 사실을 적발, 피고 건설사들에게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122억원을 부과했다. 또 들러리를 세워 낙찰받은 현대건설, HJ중공업, 코오롱글로벌 등 3개사는 검찰에 고발했다.

부산교통공사 역시 설계보상비를 반환하라며 소송에 들어갔다.

부산교통공사 소송 1심은 건설업체들이 저지른 행위는 민법상 불법행위이며 교통공사가 설계보상비를 지급하게 되면서 손해를 입었다고 판시한 후, 6개 업체가 공동으로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2심은 "입찰은 부산교통공사가 아니라 조달청이 소속된 대한민국이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며 "교통공사가 입찰 과정에 상당 부분 관여했더라도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고 판결을 뒤집었다. 소송을 낸 주체가 잘못됐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조달 계약에서 수요기관은 계약당사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계약에 따른 수익을 얻는 지위에 있고 조달청은 수수료를 받아 요청받은 계약 업무를 이행하는 것이라는 판례를 따른 것이다.

대법원은 "부산교통공사는 건설업체의 담합행위를 알았더라면 설계보상비를 지급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급한 설계보상비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고 볼 수 있고 업체들은 공사에 설계보상비 상당의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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