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독일 등 이미 시행…한미FTA 추가 협상 해야 가능

우체국 예금 사이트 캡쳐. <출처=우체국예금우체국보험>

전국 읍·면·동에 퍼져있는 우체국에 신용공여 기능을 추가해 대출업무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중금리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저신용 서민들에게 금융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지만 일각에서는 우체국의 대출업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일 우체국예금에 서민을 대상으로 한 신용공여 기능을 추가해 중금리 서민대출 시장을 활성화하고,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공적 역할 확대를 추진하도록 하는 '우체국예금·보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김 의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회복 지연과 내수침체 장기화 등에 따른 서민금융 기관의 위축으로 서민이 정당한 가격으로 금융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금융소외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개정안을 통해 서민의 금융이용 기회를 증가시키고 포용적 금융을 확산해 국민의 금리부담 완화, 가계부실화 감소는 물론, 서민의 소비여력 회복으로 경제성장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발의 취지를 밝혔다.

신용공여
대출, 지급보증, 자금지원적 성격의 유가증권 매입, 그 밖에 금융거래 상의 신용위험이 따르는 체신관서(우체국 등)의 직접적·간접적 거래를 말한다. 쉽게 말해 어떤 금액을 상대에게 빌려줄 때 상대가 반환할 의사, 반환할 능력이 있음을 믿고 일정 기간 돈을 제공하는 것이다. 대출금과 지급보증만을 포함하는 '여신'보다는 '포괄적인 빚'이라고 볼 수 있다.

개정안은 우체국예금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신용공여 업무에 한해 다른 법률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 내에서 금융감독 관련 규정을 준수하게 하고 구체적 범위를 금융위원회와 협의해 정하도록 했다.

또 신용공여의 보유한도를 예금자금 총액의 100분의 30 이내로 제한하고 신용공여에 따른 신용위험 증가에 대비해 보증보험 가입 또는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 등 안정적 운영 방안을 마련토록 규정했다.

◆ 왜 우체국 대출인가?

우체국은 2015년 기준 점포수는 전국 2611개로 총자산은 110조원에 달한다. 다만 우체국은 '대출' 업무를 하지 못한다.

금융권의 예·적금은 대부분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 대출금리는 예금금리에 1.5%p를 더해 정해지고 대출한도는 예금액의 95%까지다. 최근 시중 은행들은 접근성 강화 차원에서 은행 창구를 가지 않고 인터넷 뱅킹으로도 손쉽게 예·적금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우체국은 다르다. 예를 들어 우체국예금에 1000만원이 들어 있어도 우체국에서는 예금담보대출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우체국은 자산을 안전하게 굴려야 하는 '국가기관'에 속해 대출영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체국예금은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금융권 예금은 1인당 원리금 5000만원까지만 예금보호가 되지만 우체국 예금은 무한정 보호를 받는다. 정부가 우체국예금에 대해서는 전액 보장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퍼져있는 점포, 안전한 예금 등 우체국의 장점들을 살리면서 서민금융 활성화를 위해 나온 방안이 바로 '중금리 대출' 정책이다.

김 의원에 앞서 지난 2월 더불어민주당은 '포용적 금융정책'의 일환으로 서민금융 활성화를 위해 우체국이 10%대 금리로 신용대출을 해주는 내용의 총선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신용 4등급 이하 약 1000만여명에게 제도권 금용 서비스 이용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세균 당시 유능한경제정당위원회 위원장은 "지금까지 서민들은 신용이 낮다는 이유로 은행을 이용하지 못해 대부업 및 사채 같은 고금리 대출에 시달렸다"며 "10%대 우체국 신용대출은 (신용등급) 4등급 이하 약 1000만명 중·저 신용자들에게 금융권 이용기회를 확대해 고통을 해소하는 획기적인 대책"이라고 밝혔다.

<출처=cc0photo>

◆ 우체국 대출, '미국' 벽 넘어야

김 의원은 지난 6일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에게 "우체국의 경우 직원들이 사실상 공무원인데다가 조달금리가 1.8%에 불과해 금리인하 여력이 크다. 시·도는 물론 읍·면·동까지 거미줄 같이 깔린 네트워크 활용이 가능하다"며 우체국예금의 대출 정책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임 위원장도 "좋은 정책 제안인 것 같다. 적극 검토하겠다"며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김진홍 금융위 은행과장은 "일단 법안 내용이 오면 살펴보고 검토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우체국은 대출이 숙원사업이기도 했다. 사고 문제도 그동안 없었고 책임성이 있다는 취지는 충분히 알고 있어 검토해 볼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우체국 금융 확대를 통해 포용적 금융정책을 펼치려는 노력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프랑스는 우체국의 자회사인 우편은행을 통해 2006년 은행업무를 시작해 2011년부터 기업 금융상품으로 영업을 확대했다. 독일은 1995년 정식으로 은행면허를 취득해 소액대출 등의 업무를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우체국의 대출업무는 한미FTA 협상을 다시 해야 하는 '맹점'이 있다.

국가기관의 대출업무를 확대하는 것이 미국과 무슨 상관이냐는 의구심이 들 수 있겠지만 한미FTA 협상 당시 현행 우체국 업무를 늘리지 않도록 했다. 미국 측에서 우체국보험이 일반 보험회사보다 상품이 유리하게 돼 있다는 이유로 민영화를 압박하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또 중금리대출은 신용평가가 핵심인데, 우체국은 이를 확인할 능력이 부재하다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우체국의 소관부처는 미래창조과학부로 관리·감독 문제도 존재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우체국보험은 금융위가 감독하는 생명보험회사가 아니라서 예금보험료도 안내고 정부가 암묵적 보증을 해주기 때문에 굉장히 유리하게 돼있다"라며 "결국 우체국 업무를 늘리지 않기로 해 FTA협상을 다시 해야 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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