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성향 외부인사 중심 7명 구성…李 부회장 포함 경영진 감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증권경제신문=길연경 기자] 삼성 창사 82년 만에 외부 준법경영 감시기구를 출범시켰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배경으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낼지 주목된다.

9일 서울 충정로 지평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삼성 준법감시 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가 준법감시위원회 출범을 발표했다. 

이날 최대의 관심사는 신설되는 준법감시위의 조직구성, 운영 방향과 함께 자율성·독립성이 보장 되는지와 과연 준법감시위 출범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뇌물사건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된 법무법인 지평의 김지형 대표 변호사가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위원장 수락 배경 및 위원회 구성 운영방향에 대한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된 법무법인 지평의 김지형 대표 변호사가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위원장 수락 배경 및 위원회 구성 운영방향에 대한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변호사는 대법관 시절 진보성향 판결로 유명하다. 특히 노동 분야에 전문성이 깊은 법조인으로 삼성전자 직업병 해결을 위해 피해자와 회사가 참여한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반면 유성기업 노조파괴나 기아자동차 불법파견 등 노동사건에서 담당변호사로 사측을 대리하고, 대법관 시절인 2009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불법 경영승계 혐의에 무죄 선고한 사례도 있다. 김 전 대법관은 지난 7일 유성기업 대리를 철회했다.

먼저 김 위원장은 이재용 부회장이 준법경영 강화를 위해 신설되는 외부 독립기구인 준법감시위의 완전한 독립성을 약속한 사실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그간 준법감시위를 맡아달라는 삼성의 제안을 수차례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삼성의 진정한 의지'를 보여주는 방안으로 "완전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가진 위원회 운영을 정말 확실하게 보장해줄 수 있는지, 그룹 총수의 확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이 부회장을 직접 만나 "약속과 다짐"을 받은 다음 위원장직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위원회 운영의 기본원칙은 독립성과 자율성이 생명"이라며 "삼성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하고, 준법·윤리경영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삼성은 내부 준법감시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외부 인사 중심의 준법감시기구를 설치한 배경으로 과거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대응조치라고 분석된다.

앞서 지난 12월 6일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3차 공판에서 재판부는 삼성측 변호인단에 숙제 하나를 냈다. 삼성이 ‘비선실세’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승마훈련 지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강력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데에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장을 언급하며 실효적 준법감시제도 마련과 함께 "권력자로부터 (뇌물) 요구를 받더라도 응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변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한 것.

김 위원장은 "성역 없는 준법감시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준법감시위는 설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 삼성SDI, 삼성SDS, 삼성화재와 협약을 체결해 이사회 결의를 거친 뒤 2월 초쯤 정식 출범할 예정이다. 이날 삼성전자는 "준법감시위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존중해 글로벌 수준의 준법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도록 이사회 의결 등 필요한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겠다"고 알렸다.

위원은 모두 7명으로 법조계에서는 △김지형 변호사와 함께 △기업수사 경험이 풍부한 봉욱 변호사 △기업지배구조·공정거래 전문가인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교 교수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민사회몫으로 한겨레 출신 권태선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대표 △경실련 사무총장이었던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이 참여한다. 삼성그룹에서는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이었던 이인용 삼성전자 고문을 위촉했다.

준법감시 범위로는 △경영진 비리를 비롯해 대외 △후원금 △공정거래 분야 △부정청탁 △노조 문제 △삼성의 최대 현안인 경영권 승계 문제 등으로 규정했다. 준법감시위가 출범하면 준법감시 대상인 삼성의 7개 계열사로부터 준법경영 관련 보고와 자료 제출 등을 받을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계열사의 준법감시 정책과 계획 수립, 준법감시 프로그램이나 시스템 개선을 이사회에 직접 권고하거나 의견을 제시하고, 이행점검을 지속적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계열사 이사회가 위원회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그 사유를 통보토록 하고, 재요구나 재권고에도 불응하면 위원회 홈페이지에 공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총수(이 부회장)도 예외일 수 없다"며 "사안에 따라서는 형사 고발까지도 열어놓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 위원장 스스로 염려했듯이 준법감시위가 '이재용의 방패막'에 그치지 않겠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삼성전자서비스지회 등으로 구성된 시민단체는 9일 삼성 준법감시위 출범 기자간담회가 열리는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삼성의 준법감시위 구성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들은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 재판부가 이재용을 구속하지 않을 명분을 만들기 위해 준법감시기구를 만들라고 제안했다"며 "준법감시기구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선고에서 유리한 양형을 얻고자 하는 꼼수"라고 주장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법적 기구가 아니고 권한과 책임조차 명확하지 않은 준법감시위가 남몰래 행해지는 탈법과 불법을 무슨 근거로 막을 수 있겠냐"며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를 위한 병풍이나 장식품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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