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미국식 본따 별도 소송없이 피해 배상…소송 남발 방지책 필요 지적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징벌적 배상법'에 이어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출처=박영선 의원 공식사이트>

최근 옥시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과 폭스바겐의 디젤차 배기가스 및 연비 조작 논란으로 소비자 권익을 보장해주는 제도가 부재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집단소송제'가 주목받고 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6일 모든 분야에서 소비자 집단소송을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박 의원이 앞서 발의한 '징벌적 배상법'과 그 취지를 같이 한다.

박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가습기 살균제 사태 등 제조물 관련 대규모 소비자 피해가 잇따르고 있지만 정보의 비대칭성 탓에 그 피해를 입증하기 어렵다"며 "우리 국민들의 적절한 피해배상과 신속한 권리구제를 위해 징벌적 배상제 도입과 함께 집단소송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발의 배경을 밝혔다.

이어 "최근 폭스바겐측은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도가 발달된 미국에 대해서는 약 17조5000억원을 배상하기로 합의하면서 우리 국민들에게는 배상계획조차 마련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국내 대형 로펌을 동원하며 피해 배상을 피하기에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며 "미국에만 거액 배상을 합의한 폭스바겐 측의 행태는 현행 민사소송법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폭스바겐은 미국에선 무려 18조원의 배상금을 물기로 했지만, 국내에선 과태료 납부와 직접 소송을 제기한 사람(4400여명)만 배상하는 선에 그쳤다. 이는 환경부로부터 배출가스 조작 판정을 받은 폭스바겐 차량이 12만5000대인 것을 감안하면 3%에 불과한 수준이다.

◆ '집단소송제'가 뭐길래

'집단소송제'는 기업 등의 잘못된 행동으로 다수가 피해를 보았을 경우 소비자 한 명 또는 일부가 대표 소송을 제기해 이기면 모든 피해자가 함께 구제받는 제도로, 국내에서는 소송 남발로 인한 기업의 부담 등의 이유로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반면 많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1938년 집단소송(Class Action)을 가장 먼저 시행했고 고엽제소송, 석면소송, 자동차소송, 담배소송 등 가장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영국과 독일, 일본의 경우도 방식은 차이가 있지만 집단소송제와 단체소송제를 적용하고 있다. 중국도 1991년 민사소송법에서 집단소송제를 명문화했다.

반면 한국의 경우 2005년 증권 분야에 한해 제한적으로 도입됐다.

증권거래 과정에서 50명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 대표 당사자가 소송을 수행하면 나머지 피해자들도 판결 효력에 따라 구제받도록 규정했지만, 소송허가 규정(제15조)이 워낙 까다로워 지난 11년간 제기된 소송은 9건에 불과하다.

박 의원이 발의한 '집단소송법'은 일단 미국식 집단소송제도인 opt-out(제외신고) 방식을 기본으로, 피해자 개개인이 원고가 되지 않아도 한 번의 판결이 피해자 전원에게 효력이 미치도록 했다.

또한 피해자는 피해 내용에 대해 개략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반면 가해자는 피해자의 주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하고, 법원이 판단했을 때 가해자가 답변과 해명을 하지 않거나 석명 요구에 불응할 경우 피해자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집단소송의 적용범위는 징벌적 배상법안의 적용범위와 마찬가지로 특정 분야로 한정하지 않고 모든 사안에 가능하도록 했다.

◆ 20대 국회에서는 도입될까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지난달 소속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등 손해배상제도 개선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집단소송제도 도입에 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78.9%(1219명)가 찬성한다고 밝혔다.

같은 달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제20대 국회의원 12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6%인 121명이 소비자 집단소송제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 의견을 밝힌 의원은 6명에 불과했다.

정치권에서 집단소송제에 대한 논의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대 국회에서는 '집단소송법' 제정안 2건이 발의됐고, 관련 법안도 7건이나 발의됐지만 지지부지한 논의를 이어가다 결국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정부도 집단소송제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도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한해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지만 깜깜무소식이다.

이처럼 '집단소송제'에 대한 벽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에서 집단소송제가 도입되지 않은 배경에는 소송 남발로 인한 기업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패소에 대한 위험이 적어 무의미한 소송이 남발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15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소비자집단소송과 징벌적손해배상제의 쟁점과 도입방향' 토론회에서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 실장은 "집단소송법은 Opt-out 방식으로 잠재적 피해자까지 모두 소송에 영향을 미쳐서 기업들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며 "게다가 실제 피해자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수 없고, 구성원들의 소송비용 부담이 없기 때문에 남소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소송 남발에 대한 재계의 우려를 감안하면서도 많은 소비자가 권익을 효율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균형 갖춘 집단소송제 방안에 대해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달 27일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국민의 생명 ·신체 보호 적정화를 위한 민사적 해결 방안의 개선' 심포지엄에서 홍정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집단소송제가 확대되면 '소송이 많아질 것'이라거나 '기업이 이런 소송을 다 감당하려면 제대로 경영할 수 없을 것'이라는 논리로 대응하는 것은 기업이 다수에게 피해를 입혔더라도 복잡한 절차를 통해 적극적으로 손해배상을 받으려 노력하지 않으면 '배상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집단소송제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나 소송 남발을 방지할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집단소송제'가 20대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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