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 심근경색으로 6년간 와병...1987년 회장 자리 올라 27년간 성장 일궈내
프랑크푸르트 선언·신경영 선포·밀라노 선언 등 끊임 없는 혁신 이끌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서울삼성병원에서 향년 78세 나이로 별세했다. 사진=뉴시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서울삼성병원에서 향년 78세 나이로 별세했다. 사진=뉴시스

[증권경제신문=길연경 기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이 회장은 지난 2014년 5월 자택에서 호급곤란과 심장마비 증세로 수술을 받았고, 이후에도 삼성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이 회장은 1942년 1월 9일 경상남도 의령에서 이병철 삼성창업주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1949년 혜화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재학 중 6.25 전쟁이 터지면서 피난해 마산과 부산지역 초등학교를 거쳐 부산사범부속초등학교로 전학했다. 5학년 때인 1953년 일본 도쿄 초등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와 와세다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1966년엔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과정을 수료했다.

미국에서 MBA 과정을 마친 1966년 동양방송의 이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내무부 장관을 역임한 홍진기씨의 장녀 홍라희씨와 1967년 결혼했다. 슬하에 재용, 부진, 서현, 고(故) 윤형 남매를 낳았다.

이 회장은 부친의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재계에선 당시 45세에 불과한 이 회장이 부친인 이 명예회장의 그늘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제2의 창업'을 선포했다.

특히 1983년 자신의 사재를 털어 시작한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1993년 세계 1위(D램 부문)에 올려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신경영' 선포로 다시 혁신을 꾀했다.

1987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취임식. 사진=뉴시스
1987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취임식. 사진=뉴시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신경영 대장정은 총 8개 도시를 돌며 임직원 18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350여 시간의 토의로 이어졌다.

이 회장은 "양이 아닌 질(質) 경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품질중시 경영 메시지를 임직원에게 전파했다. 7·4제(7시 출근 4시 퇴근), 라인스톱제(불량이 발생하면 전 라인을 멈추고 원인을 파악함) 등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했다.

1995년 애니콜과 무선전화기, 카폰, 팩시밀리 등 15만대를 불태운 화형식은 유명한 일화다. 당시 삼성은 설선물로 임원들에게 2000여대의 휴대폰을 돌렸는데 '통화가 안된다'는 불만이 나왔고 이를 이건희 회장이 전해 들었다.

이 회장은 '돈받고 불량품을 만들다니, 고객이 두렵지도 않나'면서 화향식을 지시했다. 이후 7년 뒤인 2002년 삼성전자는 휴대폰 4500만대를 팔아 3조원의 수익을 올렸다.

IMF 속에서도 이 회장의 혜안을 빛났다. 1997년 국가가 위기에 빠졌지만 삼성은 '파격적이고 성역없는 구조조정'을 통해 선제적으로 위기 요인을 제거했다. 59개 계열사를 40개로 줄이는 등 조직 재정비를 단행했다. 그 결과 삼성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끊임 없는 혁신으로 삼성전자는 TV도 소니를 꺾고 1위에 올랐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점을 맞은 TV 시장에서 와인병을 닮은 보르도 TV를 2006년에 출시, 소니를 꺾고 세계 정상에 올라선 것이다.

이 회장은 또 2005년 '밀라노 선언'을 통해 브랜드 가치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이는 삼성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에 오르는데 밑거름이 됐다.

2008년 삼성 특검으로 경영일선에서 잠시 물러났던 이 회장은 2011년 4월 출근했다. 출근 이후 이 회장은 다시 '위기론'을 불어넣어 갤럭시S 시리즈 등 히트작을 만들어냈다. 갤럭시S 시리즈로 삼성은 2012년 애플을 넘어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 기업으로 도약했다.

1987년 매출액 17조원대 시가총액 1조원대였던 삼성은 2014년 기준 매출액은 40배, 시가총액은 300배 이상 성장했다. 10만명 남짓하던 임직원 수는 40만명을 넘었다.

이 회장이 삼성을 경영했던 지난 27년은 끊임없는 위기의식 속에서의 변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회장과 임직원들은 늘 만족하지 않고 '초일류'를 향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스마트폰, TV, 모니터, D램, 낸드플래시 등 수 많은 세계 1등 품목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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