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본사. 사진=뉴시스
쿠팡 본사. 사진=뉴시스

[증권경제신문=최은지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로부터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으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3억원을 부과받은 쿠팡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판결에서 사안의 발단인 공급가 차별 문제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으며, 과거 신생 유통 업체에 불과했던 쿠팡을 우월적 지위에 있었다는 판단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쿠팡은 행정 소송 진행을 예고하며 이를 바로잡겠다는 계획이다. 

◆신고 사항 7개 중 2개 수용..."손해 보전 요구"
2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쿠팡이 LG생활건강(LG생건) 등 납품업자에게 갑질을 해 공정거래법과 대규모유통업법을 어겼다고 판단,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2억9700만원을 부과했다.

이번 사안은 지난 2019년 쿠팡이 일방적인 반품과 공급단가 인하 등 이른바 '갑질'을 했다며 LG생건이 공정위에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LG생건은 쿠팡이 ▲부당한 반품요청 ▲거래거절 ▲낮은 공급가 요구 ▲다른 온라인몰 판매가격 인상 요구 ▲다른 거래처 거래 금지 ▲경영정보 요구 ▲부당한 광고 요구 등 7개 항목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공정위는 7개 항목 중 다른 온라인몰 판매가격 인상 요구와 부당한 광고 요구 등 2개만 위반으로 판단했고 나머지 5개 항목은 쿠팡의 소명을 수용했다. 

공정위가 인정한 위법사항의 공통점은 "쿠팡이 손실에 따라 납품업자들에게 과도하게 손해 보전을 요구했다"는 내용으로 압축된다. 쿠팡이 최저가 매칭 정책에 따라 2017~2020년 9월까지 100여 곳이 넘는 납품업자 대상으로 제품 가격이 경쟁 온라인몰에서 하락하면 판매 가격 인상을 요구해 쿠팡과의 가격을 맞추거나, 마진 손실을 보전받기 위해 광고 구매를 요구했다는 것이 골자다.

LG생활건강 상품의 쿠팡 공급가 vs. 타유통채널 판매가 비교
LG생활건강 상품의 쿠팡 공급가 vs. 타유통채널 판매가 비교

◆ 사건의 본질은 '공급가격 차별' 
해당 판결 이후, 쿠팡은 입장문을 내고 대기업 제조업체가 쿠팡과 같은 신유통채널을 견제하기 위해 '공급가격을 차별한 것'이 이번 사안의 본질이라고 토로했다. 

쿠팡에 따르면 LG생건은 독점적 공급자 지위를 이용해 주요 상품을 쿠팡에게 타 유통업체 판매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공급했고, 이에 대해 쿠팡이 공급가 인하를 요청한 것이 이번 사건의 발단이다. 즉, 다른 곳과 공급가를 맞춰달라는 요구일 뿐 어떠한 특별대우처럼 인하해달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쿠팡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LG생건은 A유통업체에는 C상품을 공급가와 유통비, 마진 등을 포함한 값으로 5900원에 납품했다. 그러나 쿠팡에는 공급가만 1만217원에 납품했다. 또한 B유통업체에도 D상품을 1만1380원에 납품했으나 쿠팡에는 공급가로 1만7040원에 납품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쿠팡으로서는 당시 신생 유통기업이었기에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LG생건의 다양한 제품 확보가 중요했고, 이에 '울며 겨자먹기' 식의 납품이 진행됐다는 게 쿠팡의 설명이다. 

쿠팡 관계자는 "2017~2018년 당시 쿠팡은 G마켓과 11번가에 이은 온라인 시장 3위 사업자였으며, 전체 소매시장 점유율은 약 2% 정도였다"며 "이에 반해 2017년 LG생활건강은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생활용품과 뷰티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으며, 2018년 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이 1조원을 돌파하며 현재까지 1위를 유지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누가 '갑'이었나 
갑질 기업으로 판정받은 쿠팡이 오히려 LG생건으로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관심은 사건 당시 '갑'이 누구였는지에 대해 쏠리게 됐다.

갑을 결정짓는 '우월적 지위'에 대한 기준은 유통업법에서 찾을 수 있다. 대규모유통업법 제3조에 따르면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납품업체의 경우 ▲거래 의존도 ▲대규모 유통업자와 납품업자의 사업 능력 격차 ▲유통시장의 구조에 따라 우월적 지위에 있는 여부를 판단한다.

공정위는 해당 법에 근거, 국내 소비자의 70%가 모바일 앱으로 쇼핑할 정도로 온라인 쇼핑 시장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쿠팡을 '갑'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갑'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납품업체의 매출이나 시장점유율 등 실질적인 업체간 영향력을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LG생건의 2019년 쿠팡 매출 의존도는 1~2% 수준이었다. 또한 쿠팡에서 철수한 2019년 LG생건의 매출은 7조8000억원에 영업이익도 1조1000억원을 넘어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쿠팡에서의 철수가 '갑질'로 판단될 만큼 의미 있지 않은 셈이다.

영업이익으로 살펴보면 LG생건과 쿠팡의 격차는 더 적나라하다. 당시 쿠팡의 영업손실은 6388억원(2017), 1.1조원(2018)에서 7205억원(2019)으로 누적 적자만 2조원에 달했다. 이에 반해 LG생활건강은 영업이익 9300억원(2017), 1조원(2018), 1.2조원(2019)을 기록했다. LG생활건강이 쿠팡의 갑질을 신고한 2019년 당시에는 격차가 2조원 수준이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오히려 대기업이 '납품기업'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유통 후발주자를 길들이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상품 공급력을 앞세운 횡포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가 선호하는 제품을 납품받지 못하는 건, 신생 유통기업으로서는 성장에 제동이 걸리는 격"이라며 "적어도 신생 유통업자에게만큼은 제조사에게 확실한 주도권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기업 제조 판매사가 신생 유통업체를 길들이고 관리하는 행태는 지속되어왔다. 지난 1994년 이마트 등 대형마트 중심의 유통구조가 급부상하면서 판매 가격 결정권에 대해 각종 제조업체가 반발하고 나선 일이 대표적이다. 쿠팡 등 온라인 커머스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태평양그룹(현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2004년 특정 인터넷 쇼핑몰에 일방적으로 가격 인상을 요구하다 일방적으로 제품 공급을 중단해 공정위 제재를 받은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유통업체와 납품업체의 유착 및 공생 관계가 오랫동안 이뤄진 만큼, 신생 유통업체가 납품업체의 영향력과 크기에 따라 불합리한 상황을 당하고 있다는 것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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